1990년 초까지만 해도 동북아 지역에서의 에너지협력은 정치적 이유로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이후 1991년 러시아의 체제전환과 이에 따른 중국, 몽골 등의 경제체제 변화 및 냉전체제의 붕괴로 인하여 새로운 지역협력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역협력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UNDP의 주선 하에 두만강개발계획(TRADP)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북아지역에서의 전반적인 경제협력은 다양한 형태의 경제체제 및 역사적 배경으로 인하여 그 추진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지역에서 에너지부분은 관련국의 이해가 상호 부합되는 점이 많아 협력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 등은 주요 에너지 수입국인 반면, 러시아는 동시베리아 및 극동에 천연가스 등 부존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에너지 수출국이라는 점에서 관련국가간 협력으로 많은 혜택을 공유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현재 사할린의 석유 및 가스전이 생산 및 개발되고 있으며, 이르쿠츠크 가스전의 개발도 논의 중에 있다.

그런데 현재 추진되고 있는 에너지 분야 협력사업은 개별 프로젝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협력사업과 관련한 기본방향이나 가이드라인 없이 개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프로젝트는 그 추진 속도가 매우 늦을 뿐만 아니라 불확실성도 그만큼 크다. 특히 관련사업이 대규모 사업이며, 3개국 이상이 참여하는 다자간 협력 사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국가간 에너지 프로젝트와 관련한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고,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각국 정부는 에너지 사용에 대한 장기적인 입장을 정리하는데 상호 협력하여야 하며, 이를 통해 민간부문에 인센티브와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여야 한다. 에너지협력에 있어 정부간 협조 및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은 야쿠츠크나 사할린 프로젝트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야쿠츠크 프로젝트는 1972년에 소련과 일본간에 대화가 이루어지고 기본합의에 서명하였으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미국이 내린 소련에 대한 경제제재로 보류되었다. 동 전쟁은 또한 1968년이래 논의되어 오고, 1977, 1979 및 1989년에 3개의 석유 및 가스전을 SODECO 참여로 발견한 사할린-I 프로젝트를 상당기간 지체시켰다. 사할린-II 프로젝트의 경우도 PSA가 체결된지 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생산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에너지 프로젝트가 정치적 결단 및 행정적 조정을 거치는데 얼마나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분야 협력사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케 하기 위해서는 국가간 협력을 위한 기본체제의 구축이 긴요한 실정이다.

협력체 구축의 필요성

정부차원의 국가간 협력의 일환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에너지 협력체 구성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들 지역에서의 에너지소비가 대폭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전망임에 따라 국가간 에너지수입에서 경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지역에너지협력의 토대마련이 매우 긴요한 실정이다.

둘째, 에너지공급처의 다변화 추구 측면에서 동북아 에너지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석유의 중동의존도가 중국이 60%, 일본이 86%, 한국이 77%에 달한다. 또한 천연가스도 한국 및 일본 공히 LNG형태로만 수입하고 있으며, 수입국 역시 비교적 제한적이다. 따라서 석유와 천연가스의 도입선 다변화할 필요성이 있으며, 천연가스의 경우 파이프라인을 통한 수입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셋째, 에너지원의 다양화 측면에서도 에너지협력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석유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한국 및 일본과 같이 석유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석유의존도를 축소하는 방안의 마련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안으로 고려되는 것이 천연가스, 원자력, 석탄 등의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넷째, 에너지안보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요소가 상존하고 있다. 수입지역 및 수입경로에서의 정치적·군사적 불안정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에 대비하여 석유의 경우는 전략비축이 한국 및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중국도 전략비축을 준비하고 있다. 동북아 에너지협력은 관련국간의 전반적인 협력분위기를 고양함으로써, 정칟군사적 불안을 완화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며 특히 북한과 주변국의 관계개선에도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는 동북아 지역의 에너지협력을 통하여 에너지안보의 확보와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달성하고자 역내 협력체 구성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천명하고, 2001년 6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1회 동북아 에너지협력 국제 심포지엄’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이 정부간 협의체인 ‘동북아 에너지협력 실무협의회’의 설립을 제안한 바 있다.

프로젝트 협력 추진방향

동북아 협력을 위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협력방향의 설정이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관련국 모두에게 이득을 주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로는“동북아에서의 효율적인 에너지수급체계 구축”이 제안될 수 있다.

둘째, 공동목표 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수립되어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회원국에 대해 석유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비축 및 융통의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규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역내 지역에너지의 효율적인 수급체계구축을 위한 규범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참여국간 이해의 괴리를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두만강개발계획(TRADP)에서 수송항구나 철도시설이 북한, 중국, 러시아 3국간 경쟁관계에 있다는 점이 TRADP의 시행에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넷째, 다자간 협력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양자간 협력의 활성화가 긴요하다. 양자간 협력이 잘 이루어질 경우, 상호간 의존관계가 심화되게 되어 다자간 협력은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다자간 협력과 함께 양자간 협력도 병행 추진되는 것이 필요하다.

동북아지역 국가들은 에너지 문제에 대한 지역정책체계를 확립하여야 한다. EU가 채택한 바와 유사한 지역에너지체계가 장기적인 문제와 공동의 이해에 초점을 맞춘 지역기구에 의해서 추진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지역기구는 다른 사업에 대한 노력과 병행하여 에너지 연계망 구축도 지원하여야 한다.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등이 에너지안보 촉진을 위해 어떠한 정책도구를 채택하느냐와 정치적 지원을 어느 정도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지역에서 구상되는 에너지협력 체계의 생동성(viability)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협력의 우선분야

에너지협력 분야로는 △에너지 수출입 및 유통분야 △에너지 인프라 확충 및 투자분야 △에너지-환경 및 기술분야 등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으나 보다 구체적인 분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대상이 될 수 있다.

-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연계망의 구축
- 원유수입 및 물류 부문
- LNG 수입분야
- 전력 연계망의 구축
- 에너지-환경 분야
- 석유, 가스 등 에너지자원의 탐사 및 개발
- 에너지관련 기술개발 및 이전

이러한 분야 중에서 우선협력의 대상은 협력의 효과 및 관련국의 이해관계 측면에서 볼 때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연계망의 구축 및 원유 수입/물류 부문에서의 협력이다.

천연가스 연계망의 구축은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소비지까지 운송하는 수송망 구축이 일차적인 협력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계망의 구축은 자연스럽게 소비국간의 연계망 구축을 이루게 할 것이다. 또한 원유 수입 및 물류 부문에서의 협력은 기존 원유저장시설의 공동이용 확대와 수입에서의 협력 특히 중동원유의 동서 가격차 축소를 위한 방안마련에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환경 분야도 관심이 큰 분야이다. 기후변화협약의 발효와 함께 중국 등에서 CDM 추진과 관련하여 Annex I 국가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 및 일본의 경우 황사 등 전반적인 오염물질의 월경문제와 관련하여 환경분야에서 협력에 매우 적극적이며, 중국의 경우도 환경오염의 피해확대와 함께 환경에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과거 진행되었던 투자비에 근거하여 경제성을 판단한 결과 동북아지역의 천연가스사업은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러나 개별 프로젝트에 의해 추진되기에는 국가간 이해, 정치적 결정 등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조속히 해결하고 사업이 효율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간 에너지 협력을 위한 협력체 구축을 통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창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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