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온(cryogenics)이라함은 -150℃(123 K) 이하의 온도 영역을 지칭한다. 상온에서 기체상태로 존재하는 대부분의 가스들이 -40℃ 이상의 온도에서 액화되지만, 소위 초저온 가스(혹은 영구적인 가스)라 불리우는 헬륨, 수소, 네온, 질소, 산소, 아르곤, 공기, 메탄 등은 -150℃ 이하로 온도가 떨어져야만 액화가 된다. 고체의 물리적 성질, 즉 열응력, 열팽창, 충격강도, 연성 및 탄성 등도 상온에서 -150℃ 까지의 온도영역에서 주도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초저온의 온도영역에서는 그러한 변화의 정도가 현저히 작아진다. 따라서 초저온의 온도 영역 구분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지구상의 대부분의 물질들이 초저온과 상온의 온도영역에서 뚜렷이 구분되는 물성을 보이는데, 초저온 공학(cryogenic engineering)은 이러한 초저온 기술, 공정 및 장비들을 연구개발하는 학문 분야이다. 액화가스 저장탱크, 펌프, 이송배관설비 등과 같은 초저온 산업장비들은 상온과 초저온 사이의 열전달을 방지하기 위한 단열방법, 열수축을 극복하기 위한 열응력 그리고 초저온에서 충격강도 및 연성 등의 기계적인 물성 등을 고려하여 설계 및 제작된다. 또한, 상온과 초저온 사이의 열적 사이클에 대한 내구성 및 매우 작은 열침입으로 인하여 증발해 버리는 초저온 액화가스의 성질 등이 고려된다.


기술개발 발전과정

초저온 기술은 기초적인 기술로서 산업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고에너지(입자물리) 연구, 기초연구, 극저온 실험 등 기초적인 학문 분야와 초고순도 가스정제, 급속냉각, 고진공, 항공우주, 식품동결, 통신, 유전공학, 생명보존, 의학, 반도체 등의 첨단과학 산업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초저온 공학은 1892년 James Dewar가 초저온 저장 탱크를 개발하고, 1902년 Gorge Claude가 대규모 공기 액화장치를 개발하면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1908년 Kamerlingh Onnes가 헬륨가스를 -268.95℃(4.2 K)에서 액화시키기 전까지는 과학적인 호기심에서 온도를 떨어뜨리기 위한 도전이었으나 초전도현상(전기저항이 “영”이 되는 현상)이라는 경이적인 물리적 발견으로 금속, 비금속에 대한 물리적 화학적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본격적으로 산업에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까지 세계 2차대전과 우주항공산업에 대한 투자로 초저온 기술은 급격히 발전하였다. 초저온을 얻을 수 있는 냉각장치와 초저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재료들이 많이 개발됨에 따라 0.01 K까지 도달할 수 있는 냉각조(cryostat)가 개발되고,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사용하는 우주 추진 로켓이 발사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산업현장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액화가스 저장탱크, 이송용 배관 및 밸브, 공기분리장치, 액화가스 펌프 등 많은 산업장비와 cryostat, 극저온 냉동기 등 연구장비들이 성능면에서 크게 개선되었다. 특히, 많은 금속성 저온초전도체가 발견되었고, 1973년에는 Josephson 초전류(supercurrent)의 양자역학적 터널링(tunneling)현상이 발견되어 초전도체 소자를 이용하여 미세한 자기장 검출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박막 소자가 산업장비(특히 의료용 장비)에 활용되게 되었다. 1987년에는 많은 과학자들의 꿈이었던 고온초전도체가 발견되었다. 고온초전도체는 가격이 저렴한 액체질소를 사용하여 냉각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산업적 응용에 대한 기대감으로 직·간접적으로 고온초전도체를 연구하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산업용 가스(질소, 산소, 아르곤)와 의료기관에 필요한 의료용가스를 대규모로 공급하게 되면서 서서히 초저온 기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기초적인 기술이 워낙 취약하였고, 초저온 장비에 대한 수요가 적은 탓에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입국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기술을 선진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특히, 산업용 가스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선진국 자본과 공동 투자된 상태이고, 선진국에서는 이미 대규모의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국내에서 기술개발을 위하여 중복투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성산소(주)는 국내의 초저온 기술을 발전시키고, 초저온 기술에 대한 국내 수요에 대하여 신속하게 대처할 필요성을 인식하여 독자적으로 초저온연구소를 설립하여 초저온 및 가스와 관련된 장비들의 개발을 시작한 상황이었다.
1994년이래 초저온 기술은 초저온 액화가스 이송라인의 진공단열배관, 초저온 진공자켓밸브, 기액분리기, 초저온저장탱크, LNG 저장탱크 등 산업현장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장비에 있어서 괄목할 만하게 발전하였다. 특히, 기초과학지원연구소의 KSTAR 프로젝트와 고온초전도체의 상용화가 G7 연구개발 과제로 선정됨에 따라 초저온 기초기술에도 많은 발전을 기대하게 되었다. 최근 항공우주연구소에서 추진한 액체산소를 조연료로 사용하는 추진로켓의 성공적인 시험발사는 국내의 초저온 공학 기술이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분야별 기술현황

초저온 기술을 분야별로 구분하면 초저온 액화가스 생산, 이송라인, 저장탱크, 초저온 응용, 극저온 생성 및 고진공의 5개 분야로 구분할 수 있다. 초저온 액화가스 생산 분야에는 공기분리장치, 수소, 네온, 헬륨 및 천연가스 액화장치를 들 수 있다. 공기분리장치는 공기를 액화한 후 비등점을 이용하여 질소, 산소, 아르곤을 성분별로 분리하는 장치로 국내에서는 대성산소(주)가 연구개발을 완료하여 상용화를 위한 개발이 진행중이다. 수소, 네온, 헬륨 및 천연가스 액화장치는 국내에서는 이론적인 연구는 있었으나 수요가 한정되어 있어서 개발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액화가스 이송라인과 초저온 액화가스 저장 탱크 분야는 액화가스를 사용하는 산업현장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필요한 장비들을 포함하며, 국내에서는 가장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다. 액체의 이송과 저장에 가장 기본이 되는 진공단열배관, 저장탱크 및 소형 이동용 저장 탱크(LGC) 등은 기술 수준이 선진국과 비교하여 거의 손색이 없어 보인다. 기-액분리기는 기체와 액체를 분리하여 순수한 액체만을 공급하는 장비로, 주로 반도체 제조, 의약품 제조, 식품 동결, 캔음료 제조, 의약품 제조 등의 장비에 순수한 액체질소만을 공급하여 물체를 급속하게 냉각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

기-액분리기 및 레벨제어기, 초저온 액화가스 필터는 선진국의 기술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다. 반면에 초저온 액화가스 유량계, 액화가스 원심펌프 등은 아직 연구단계에 있고, 왕복동식 펌프는 국산화가 되어 보급되고 있으나 성능개선을 위한 개발이 필요하다. 극저온용(액체헬륨) 저장탱크와 초저온 열처리 장치는 수요가 한정된 관계로 개발되지 않고 있으며, 의료 및 생명공학 연구를 위한 초저온 보존 (cryogenic preservation) 장치는 신뢰성을 구축하기 위한 연구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초저온 응용 분야에는 대표적으로 식품동결기, 액체질소 주입기(LN2 injector), 초저온을 이용한 가스정제기(헬륨, 수소 등) 등이 있다. 식품동결기와 액체질소 주입기는 식품업체에서 식품동결과 캔음료 제조에 사용하는데 국산화가 되기는 하였으나 국내 시장의 여건이 좋지 않아 활성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 헬륨, 수소 정제기는 액체질소의 한랭을 이용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는 초고순도 정제기로 반도체 제조공장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는 저온생성 및 고진공 분야이다. 극저온의 생성은 기계적인 장치를 사용하여 -200℃ 이하의 온도를 생성하는 냉동기와 4.2 K 이하의 온도를 생성하는 냉각조(cryostat) 등이 있다. 현재 선진국에서는 0.001 K 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장비들이 상용화되어 많은 연구소에서 기초연구를 위하여 사용 중에 있다. 특히 반도체 장비의 고진공 펌프는 연구개발이 완료된 상태이고 반도체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아직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는데, 고진공 펌프의 경제성과 신뢰성 문제로 기업들이 적극적인 상용화 개발을 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나노 기술과 생명공학의 보존 기술에 대하여 국가적인 관심이 커지고, 초정밀 센서 냉각, 광통신 소자냉각, 의료용 장비, 고온초전도체 응용 등 첨단과학의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이기 때문에 조만간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저온 생성 및 고진공 분야는 국내 초저온 기술 분야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며, 향후 첨단과학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연구개발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향후 나아갈 방향

국내의 초저온 기술은 지난 10년간 많은 발전을 하였다. 산업용 장비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공기분리장치와 같은 대형 장비들도 조만간 상용화가 가능하리라 본다. 그러나 국내의 한정된 수요로 인하여 극저온 생성과 고진공 시스템 그리고 몇몇 초저온 응용 장비들에 대한 기업의 관심도가 작아서 기술개발이 미흡한 상태이다. 특히 이 분야는 21C 첨단과학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이 필요하다.

WTO의 성립으로 세계 무역장벽이 낮아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을 블록화하여 자국의 시장을 보호하려는 추세에 있다. 또한 모든 나라가 기술로서 승부할 수밖에 없는 기술 전쟁의 시대에 돌입해 있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이 저가를 내세워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직 인력과 기술로서 세계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첨단 과학 기술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첨단과학기술의 기초 기술중의 하나인 초저온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대성초저온연구소 이현철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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