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교흥 국회의원(열린우리당)
2006년 신년을 시작하면서 들려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천연가스 공급중단 사태는 전 유럽의 천연가스 시장을 뒤흔들면서 그동안 설마설마 하며 안일하게 대처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현재 유럽은 전체 가스소비량의 약 25%를 러시아에서 공급받고 있으며, 일부는 영국, 노르웨이 등 유럽자체에서, 그리고 나머지는 아프리카, 중동 등 유럽이 아닌 지역에서 공급받고 있는 실정이다. 즉, EU에 가입한 주요 국가들의 전체규모를 보면 약 60%정도의 가스소비량을 유럽이 아닌 지역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2020~2030년경에는 전체 소비량의 65~70% 수준까지 유럽이외의 지역에서 수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당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가스공급 중단으로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의 경우는 가스공급량이 줄면서 동절기 수급비상 사태가 발생되고 있으며, 그동안 에너지 안보에 어느 정도 대책을 마련해 놓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도 향후 전개될 파급효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 가스산업의 현실

우리나라의 경우 천연가스가 2004년 1차 에너지 소비량을 기준하면 약 12.9%를 차지하고 있어 석유, 석탄과 함께 국가에너지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천연가스는 국가 산업발전과 국민연료로서의 중요성 때문에 국가의 생존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가스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절기와 하절기의 기온이 섭씨 45~50도 차이로 인한 극심한 동고하저형 수요패턴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그동안 도시가스 보급정책에 따라 다른 연료로 교차사용이 거의 불가능한 도시가스 수요가 전체 65%를 차지하고 있고, 2017년경에는 약 80%까지 도시가스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장설비는 선진국가의 50%수준인 약 9%(약 33일분 저장능력)만을 보유하고 국가 전체적인 천연가스 수급을 지탱하고 있다.

현재까지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국가중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현실적인 제약요인을 가진 국가는 아마 전무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우리나라는 매년 동절기만 되면 천연가스 수급불안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심한 경우 동절기 일일소비량의 약 5~7일 정도 재고만을 보유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석유의 경우는 1973년 및 1979년의 제1, 2차 석유파동, 1990년 걸프사태, 2003년 이라크전쟁, 그리고 최근의 유가 급등을 겪으면서 에너지 안보차원에서 2005년 1월 현재 105일분의 원유재고와 유가완충기금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8년까지는 135일분의 비축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정책과 비교할 때, 가스산업에 대한 국가적인 에너지 안보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유럽의 에너지 안보실태와 고민

최근 천연가스에 대한 에너지안보 문제를 가장 고민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영국이다. 지금까지 영국은 스스로 가스산업의 구조개편, 시장자유화 등에 가장 훌륭한 모델케이스라고 자부하였고, EU통합 당시에도 유럽대륙의 가스시장 개방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던 국가였다.

하지만 지금 영국이 유럽국가들 중에서 가스산업에 대한 에너지 안보문제를 가장 고민하는 국가가 된 것은 그동안 북해 가스전에서 자국수요를 100%로 충당하면서, 여유분은 유럽대륙의 가스시장 개방에 따라 수출까지 하는 호기를 만끽하였으나, 북해 가스전의 생산량 축소로 이제 천연가스의 순수입국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때 늦은 에너지 안보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유럽대륙의 대부분의 국가는 영국과 달리 러시아, 노르웨이, 영국,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 가스를 상당부분 수입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인 공급안정성을 기하기 위해 충분한 저장시설 확충, 장기 도입계약의 확보 등 에너지 안보측면의 대책을 수십년간에 걸쳐 준비해 놓았다.

예를 들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은 약 20%이상(70~90일분 저장능력) 저장비율을 갖추고 있는 반면, 영국은 자체 북해 가스전의 생산능력을 일일 소비규모 대비 1.6배 이상 갖추도록 하면서 저장비율은 4%정도(약 15일분 저장능력)만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에너지 안보문제에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EU에서는 가스시장에 대한 에너지 안보기준을 마련하여 각 국가별로 최대 단일 생산자의 60일간 가스공급 중단시, 20년만에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인 추위가 3일간 지속시, 50년만에 발생할 수 있는 동절기 추위에도 연료대체 능력이 없는 일반소비자에게 가스공급에 문제가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토록 권고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와 가스시장 자유화

에너지 안보문제와 가스시장 자유화에 대한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분명한 것은 시장 자유화를 계기로 가스도입계약 기간이 당초 장기위주에서 점차 단기위주로 전환되고 있으며, 대형 설비투자를 기피함으로써 장기 안정적인 공급체계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까지 시장개방, 자유화가 되면 독점적인 공급체계보다 시장의 자율적인 기능에 따라 장·단기적인 수급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주장하던 일부 전문가 의견에 대해 재고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까지 가스산업에 대한 시장개방, 자유화를 추진한 국가들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국산 가스로 충분히 자체수요를 소화할 수 있는 영국, 미국, 호주 등이 가스 생산자들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시장자유화를 가장 먼저 추진하였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대륙의 대부분 국가들은 오히려 에너지 안보차원에서 인접국가로부터의 가스도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EU가스지침에 따라 시장자유화를 시작하였다.

또한 일본의 경우는 수요패턴이 양호한 발전용 수요가 국가 전체수요의 60%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저장설비 보유도 사업자별로 약 50일 이상 유지하게 됨으로써 국가차원의 에너지 안보를 어느 정도 확보한 상황에서 1990년 후반기부터 단계적 시장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즉, 시장개방에 대한 각국의 입장을 분석해 보면, 영국, 미국 등 풍부한 가스전을 보유한 국가는 천연가스의 안정적인 공급측면보다 효율성을 우선 강조하여 시장 자유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고, 반면 수입의존도가 높은 유럽 대륙국가들과 일본 등은 시장의 효율성보다 에너지 안보측면을 고려하여 시장개방이나 자유화를 더디게 추진한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유럽에서 발생한 천연가스 시장의 비상 수급상황은 우리나라에게 비록 간접적인 영향은 있을 수 있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천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직접적인 피해 당사국이 아니라고 안심을 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가스산업의 현실을 냉정하게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의 시기가 가스시장의 효율성을 중시해야 할 시기인지, 아니면 에너지 안보측면에서 장·단기적인 천연가스의 안정공급을 중시해야 할 시기인지, 또한 안정공급이 우선이라면 우선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안보란 발생가능성은 적지만 만약 발생할 경우 그 피해정도가 엄청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보험이라고 볼 수 있다. 보험은 당장 보험료 지불에 대한 부담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에너지 분야에서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당연히 비상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고, 그 이후에 가스시장의 효율성을 고려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2006년도 산업자원부장관 신년사를 보면, 에너지기본법 제정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를 국가생존차원의 과제로 인식하고 범정부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가스공급 중단사태가 일단 타결되기는 했으나 이번 분쟁을 교훈삼아 정부의 가스산업에 대한 에너지 안보측면의 정책변화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 러시아와 유럽간의 가스공급 배관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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