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수출 부흥은 제품 해외규격 정합화로 이뤄내야
설비업계, 구조적 한계 극복에 전문성 다양화 필요

가정용 가스보일러가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지 수십 여 해가 지났다.

우리나라 가스보일러 기술력은 명실공히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진일보했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 보일러업계는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EN규격 부합화 이후 보일러 해외수출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업계의 예상에도 불구하고 수출 여건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소비 수준의 격상과 경기불황, 무자격시공 등 업계 내 구조적 문제로 인해 설비업계 역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국내 가스보일러 시장이 규모로는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이처럼 아직도 내적으로는 여러 구조적 문제점들이 남아있는 가운데 필자는 보일러업계에 의탁 중인 한 사람으로서 향후 가스보일러 제조업계와 설비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보고자 한다.

 

 

▲ 전국보일러설비협회 박현관 상무
제조업계, 제품경쟁력으로 유럽시장 뚫어야

가스안전공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에 보급된 가정용 가스보일러는 약 1300만대 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가스보일러 제조사 전체의 연간 보일러 생산능력은 200만대를 상회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수치만 보면 가스보일러 단일 시장으로 한국은 세계 최대 규모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실제 연간 생산량은 100만대 수준으로 통용되고 있어 ‘대한민국 가스보일러 생산능력 200만대’와 ‘연간 100만대 생산량’을 비교하면 실질적인 생산량은 50% 수준에 그친다 할 수 있다. 능력에 비해 실력발휘를 못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가스보일러 제조사의 가격 낮추기 경쟁의 근본 원인은 이러한 ‘과도한 능력’에서 비롯됐다 볼 수 있다. 각 제조사는 생산능력을 조금이라도 더 발휘하고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과당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 연간 100만대 보일러 시장이 해외 제조사의 눈에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1300만대 보급량만 보더라도 한국인만큼 난방시설에 전폭적으로 가스보일러를 이용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보일러 없이 살 수 없는 문화적 배경이기도 하다.

이는 외국계 보일러 제조사가 질 좋은 제품과 선진국 수준의 서비스를 무기로 우리나라에 보일러를 보급하겠다고 마음먹고 파고들면 시장잠식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산 보일러가 들어오는 것과 보일러의 본고장 유럽 제품이 우리나라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 또한 이러한 우려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국내 보일러 시장은 결코 해외업체가 녹록히 볼만한 개척대상이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보일러 제조사는 포화상태의 내수시장에서 벗어나 수출형 사업으로 체질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 결과물들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가정용 콘덴싱 가스보일러 개발에 관한 중기거점사업으로 효율 90%가 넘는 보일러를 개발했고, 그 것을 또 뛰어넘기 위해 그린 콘덴싱 보일러개발사업도 진행 중이다. 국내 보일러 기술을 선진화 시키고자 기존 KS규격을 EN규격에 부합시키는 작업도 완료됐다. 이 밖에도 보일러와 신 재생 에너지와의 융합작업마저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보일러업계가 극복해야 할 장애요소는 분명 존재한다. EN규격 부합화 작업이 완료되고 2011년부터 적용되고 있음에도 보일러 시장의 변화는 여전히 미미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가스보일러업계는 치열한 내수시장의 과다경쟁과 포화된 시장을 극복하고자 수출지향 사업에 주력하고 있으나 세계 최대시장인 유럽시장과 중국시장에서는 비관세무역장벽, 특히 EN규격과 KS규격간 괴리로 인해 국내 보일러산업의 해외진출 흐름이 매끄럽지는 못하다.

기술 진원지인 유럽에 보일러를 수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국내 보일러 기술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기에 유럽시장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이에 유럽형 보일러를 제조할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하는 차원에서 보일러업계와 정부가 EN규격 부합화를 진행한 것이다.

다만 EN규격의 국내 적용시기, 국내 보일러 기술기준의 상이함에 따른 EN규격 적용의 어려움, 유럽과 국내의 환경과 난방문화의 차이에 따른 적용기술의 차이 등 여러 난제로 국내 EN규격 제품의 유럽시장 장악력은 여전히 부진하다.  

결국 보일러 제조기술을 더 끌어올려야 유럽에서도 인정하는 제품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환경과 유럽의 환경이 다르니 유럽에 적합한 규격을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할 경우의 문제점을 생각해 EN규격을 우리 실정에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를 더 연구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규격을 적용하도록 강제하게 되면 기술력 부족과 가격경쟁력의 열세로 수출은 고사하고 내수시장은 유럽산 제품과 중국산 제품에 밀려 국내 기업은 조금씩 사라질지도 모른다. 규격이 개정됐으니 자체적으로 유럽 방식의 보일러가 당연히 개발되리라는 기대는 매우 안일한 사고방식이다.

매뉴얼을 만들었으니 제조사가 이를 그대로 적용할 것이라 마음 놓을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응용할지를 알려야 한다. 관·민·학이 협력해 제품 경쟁력 향상과 EN규격에 대한 정확한 이해, EN규격을 우리 실정에 맞춰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 확보를 위해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보일러 유관협회들은 설비업자 정기 실습교육을 통해 전문 기술인력을 배양함으로써 설비업계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은 전국보일러설비협회 설비업자 실습 교육현장)


급변하는 시대 전문성 강화가 관건

우리나라의 에너지정책이 최근 많이 변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전력부족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더니 급기야 2011년 9월 대규모 ‘블랙아웃’으로 온 나라가 한바탕 요동쳤다. 지금도 겨울과 여름철의 전력부족 현상으로 대형건물과 공공건물에 대해 실내온도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력사용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으로 가스냉난방 시설에 대한 정부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며, 한국의 온돌난방을 변형한 ‘복사냉방’기술을 도입해 상용화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 졌다. 우리나라가 제안한 온돌 표준안이 국제표준기구 기술위원회(ISO/TC) 회원국 투표에서 승인해 국제표준안으로 채택되고, 가스보일러는 더 효율이 높은 방향으로 발전해 콘덴싱보일러 보급정책이 국가의 중요 에너지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집밖에서 집안의 조명과 실내온도를 조절하는 시대가 왔으며 각 전기·가스기기 제조사는 이에 발 맞춰 새로운 제품을 속속 개발해 출시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해 이미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08∼2030)’을 수립한 바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후속 계획이 발표될 것이며 이에 대한 전 국민의 움직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처럼 국내 에너지정책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고 보일러 시장에도 새로운 흐름이 태동하고 있지만, 설비업계는 유럽발 경제위기의 여파로 심각한 실물경기 위축을 체감하고 있다. 몇 년간 호황을 이뤘던 가스보일러의 개보수, 교체물량이 어느 날 갑자기 썰물처럼 줄어들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설비업자들은 일감이 없어 고전 중이다.

여전히 무자격불법시공으로 많은 설비업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으며, 판매보다는 시공을 통해 이익을 보전하려는 일부 보일러판매점들의 업역 침해로 설비인의 시름이 점점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설비업계의 자구적 정화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게다가 예전에는 보일러 교체·설비와 수리만으로도 그 동안의 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설비업계는 이제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으며, 설비인들의 파격적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소비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그리고 각종 매체를 통해 설비인만이 가진 지식을 공유하고 있고 기기의 편리함과 더불어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경향이 강해져 단지 보일러설비만으로 생업을 이어나가기 힘들어졌다.

변화에 맞춰 설비업 종사자는 다재다능하고 전문화된 기술을 보유해야 하며 서로 공조체제를 갖추어 협동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설비업계는 이 모든 시장 구조적 상황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불황에 마냥 좌불안석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액션’을 취해야 할 때다.   

여기에는 전국적으로 조직망을 갖춘 보일러 협회들의 역할이 클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보일러 유관협회를 중심으로 다각적인 설비업자 교육 및 계도사업과 불법시공 단속작업이 시행되고 있으며, 각 협회간 긴밀한 협조체계 유지를 통한 업계질서 유지와 업계 공동발전이 추진되고 있다.  

위기라고 하지만 달리 보면 이것은 기회이기도 하다. 당장 어렵다고 해서 희망을  국민 모두 담당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고 국내외의 위기 속에서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해치면서 돌파구를 찾는다면 더 힘찬 도약의 기회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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