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자원개발 멈추면 에너지위기 초래

정치권 국정조사·감사원 전방위 압박 거세져
국회 예산 반토막…공기업 투자 엄두도 못내
드러난 문제점 개선, 중장기 투자 이어져야 

▲ 한국석유공사가 사업참여 중인 베트남 15-1 갈사자남부 생산시설

감사원은 지난 3월 25일부터 3개월간 해외자원개발 사업과 관련 석유공사,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을 대상으로 고강도의 성과감사를 벌이고 있다.

이같이 감사원이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고강도 감사에 나선 것은 해외자원개발사업 추진이 에너지안보, 자원공급의 안정성 등을 위해 그 필요성이 인정되는데도 불구하고 다수의 사업이 부실 추진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부정확한 정보와 이해 부족 등으로 성과 논쟁이 지속적으로 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그동안 사업참여 초기에 고가 매수, 기대수익 감소 등으로 투자금 회수가 불투명한 개별사업이 다수 존재하고 있는데다 출구전략 없는 계속투자, 사업관리 부실 등 사업위험이 확대되고 비현실적 자산매각 추진과 차입위주의 자금조달로 해당 공기업의 재무적 위험이 가중돼 종국에는 국가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23일에는 한국가스공사, 한국전력공사 등에 대한 ‘정부 및 공공기관 등의 해외자원개발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려 열띤 공방이 이어졌다.

국정조사 특위에서 야당 측 위원들은 “MB시절 자원외교에 무분별한 투자가 이뤄져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했다. MB시절 주요 정책을 집행했던 현재 정부 및 에너지 공기업 관계자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야당 위원들은 가스공사 이라크 일부 사업 및 호주 GLNG 프로젝트, 캐나다 일부 사업에 대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비판에 가세했다.

반면 여당 위원들은 “일부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정확한 경제성 분석 등 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못하고 절차를 무시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자원개발사업의 성공률이 20% 미만이라는 점을 고려해 공과를 판단해야 한다. MB정권에서만 자원개발이 실패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야당 측과 각을 세웠다.

야당 측에서는 지난 MB정부 때의 해외자원개발 실패사례를 극대화시키며 공론화해 현재 정권으로 연장선을 그으려는 전략인데 반해 여당은 ‘MB정권 이전 정권에서도 자원개발의 성공과 실패는 반복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선긋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야당 측에서는 정치적 공세를 이어가려는 반면 여당은 일부 문제는 있으나 과거에 있던 사례로 개선과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정치적 논리에 정책 표류, 투자 실종

이처럼 해외 자원개발 사업이 정치적 논리에 휩싸이면서 표류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투자실패와 비리 의혹 등 문제에 매몰돼 세계적 자원확보 경쟁에서 뒤처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 목소리가 크다. 특히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이 투자의 적기라는 분석이 제기되며 성과에 대한 비판 일변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실제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남미 4개국 순방 일정을 살펴보면 자원개발과 관련된 의제설정이나 공식일정 등 정부 차원의 사업추진 계획은 전무했다. 하지만 불과 4∼5년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08년 브라질·페루 등 남미순방의 화두는 단연 자원외교였다.

정부의 정책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에너지자원 특별회계 중 해외 자원개발사업예산’은 2014년 6391억원에서 올해 3594억원으로 반토막 났으며 한국석유공사에 대한 유전개발사업 출자도 같은 기간 1700억원에서 570억원으로 66% 줄었다. 지난해 국회는 석유공사의 셰일가스 신규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해외 자원개발은 장기적 전략을 갖고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공기업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석유공사·가스공사·광물자원공사 등이 대표적 자원개발 공기업들인데, 이들은 박근혜정부의 공기업 부채 구조조정과 예산삭감이라는 바람 속에 신규 자원개발 사업을 사실상 중단했다. 과거 정부의 자원외교에 앞장섰던 기업들 역시 현 정부의 눈치를 살피며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근시안적 상황판단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단순 자원수입과 개발참여 등 단기·장기적 자원확보 포트폴리오를 꾸려야 한다”며 “현 정부가 자원개발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것은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자원확보’라는 중장기 전략을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석유·광물가격 안정세가 지속될 올해부터 내년 초까지가 자원개발 투자의 최적 시기이며 최소 5년 이상 투자가 계속돼야 하는 자원개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미 확보한 우량사업에 대한 소유권을 상실함으로써 국가적 손실이 확대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13일 해외자원개발협회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서 추진한 자원개발 사업건수는 15건에 그쳤다. 지난 2013년 33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실적이다. 석유가스사업이 9건으로 전년 대비 한건 늘었지만 광물분야 사업은 25건에서 6건으로 급감했다.

공·민간기업이 해외에서 추진한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정부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2008년 107건을 기점으로 2011년을 제외하고 매년 감소해 지난해 최저치로 떨어졌다.

전체 투자금액도 크게 줄었다. 자원개발 사업 투자금액은 지난 2008년 5800만달러를 시작으로 2011년 총 1억460만달까지 치솟았다가 2013년 7500만달러로 줄었다. 최근 업계투자 경색 기조를 감안하면 지난해 투자 금액도 전년 대비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 에너지안보를 위해 지속적인 해외자원개발사업이 추진돼야 한다.(사진은 가스공사가 지분참여하고 있는 예멘 LNG현장)

저유가 활용한 양질의 자원 확보 시급

국제유가는 지난해 하반기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다 최근 50달러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로 인해 경쟁 개발 중인 석유가스전이 매물로 나오거나 신규 사업 투자 금액도 감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자원개발업계 관계자는 “최근 북미지역을 비롯한 석유가스전 매물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고 가격도 과거에 비해 낮게 형성된 상황”이라며 “무분별한 투자는 자제해야겠지만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하면 자원개발 필요성이 충분한데도 몸을 사리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감사 성과를 가져오더라도 개별사업에 대한 모든 평가결과를 그대로 공개하기에는 무리수가 따른다.

해외자원개발사업의 경우 사업성격상 투자자들간의 비밀조항이 있는데다 사업지속 여부를 사전에 공개할 경우 향후 매각시 현존가치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으로 매각할 수 밖에 없어 국가적으로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한 관계자는 “철저한 감사를 통해 해외자원개발사업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개별 사업에 대한 성과분석을 통해 향후 해외자원개발사업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자칫 전문성이 결여된 채 감사 성과 발표에만 치중할 경우 비밀조항까지 경쟁국가에 노출될까 염려된다”고 지적했다.

해외자원개발 관련업계는 ‘해외자원개발을 추진하면서 생긴 과오들은 질책받아 마땅하지만, 민간 기업에 대한 해외자원개발 융자 지원을 대기업에 대한 특혜로 치부하고 비판을 지속한다면 향후 민간기업의 해외자원개발 추진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며 해외자원개발 투자는 급속히 위축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또한 지금이 양질의 자산을 저가로 매수할 수 있는 투자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서울소재 자원개발 특성화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 역시 언론에서 잘못된 사실과 통계자료를 근거로 한 기사들을 오보함으로써 해외자원개발 업계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지금이 왜 해외자원개발의 투자 적기인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확한 통계치를 근거하여 국민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과거로 회귀하면 성과에 찬물’

이처럼 해외자원개발 업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의 해외자원개발산업이 1990년대 후반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당시 외환위기와 저유가로 인하여 투자가 어려워진 해외자원개발 기업들은 보유하고 있던 많은 해외 자산들을 헐값에 매각하였고, 정부도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는 등 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침체기를 겪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유가를 비롯한 자원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매각했던 자산 중 일부는 소위 말해 ‘대박’이 터져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우리는 뒤늦게나마 해외자원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선진 메이저기업과 비교했을 때 인력, 기술, 인프라가 부족하였으며 중국·일본 등 우리 주변국과 비교했을 때에는 정부지원과 자금력 등에서 매우 뒤처져 있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15년 지금 다시 18년 전으로 되돌아온 것 같다. 많은 기업들이 투자를 결정하기 보다는 매각과 철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지금의 상황이 에너지 해외 의존율이 97%에 이르는 우리의 현실을 간과하고 어렵게 쌓아온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자원가격이 하락한 지금이야말로 투자의 적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광구의 가격이 하락한 지금 투자에 뛰어들어야만 자원 가격이 올랐을 때 큰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해외자원개발업계는 ‘한 단계 도약하느냐, 과거로 회귀하느냐’의 기로에 놓여있다. 해외자원개발은 정권이나 유가 등에 따라 정책이 조변석개해서는 안되는 중장기적 국책사업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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