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 가스배관 절단 사건
- 대구지방법원 2015. 4. 22. 선고 2014나9715 판결 -
1. 사실관계
甲은 전체 4층 건물의 1층을 임차하여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4층에 거주하던 한 거주자(이하 ‘가해자’)가 자살을 시도하며 고의로 가스배관을 절단하여 가스폭발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건물 4층 외부벽체 일부분이 파괴되고, 2층부터 4층까지의 창문 일부가 파괴되었다(이하 ‘이 사건 사고’라고 한다). 이에 甲은, 위 건물의 임대인인 乙이 甲의 원활한 영업을 위하여 파손된 건물을 조속히 복구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게을리 하여 甲에게 영업손해, 설비 및 집기물 손해, 위자료 등의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乙을 상대로 위 손해의 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2. 판결요지
항소심 판결인 대구지방법원 2015. 4. 22. 선고 2014나9715 판결은, “임대차계약에 있어서 임대인은 임대차목적물을 계약 존속 중 그 사용ㆍ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할 의무를 부담하므로, 목적물에 파손 또는 장해가 생긴 경우 그것이 임차인이 별 비용을 들이지 아니하고도 손쉽게 고칠 수 있을 정도의 사소한 것이어서 임차인의 사용ㆍ수익을 방해할 정도의 것이 아니라면 임대인은 수선의무를 부담하지 않지만, 그것을 수선하지 아니하면 임차인이 계약에 의하여 정해진 목적에 따라 사용ㆍ수익 할 수 없는 상태로 될 정도의 것이라면 임대인 수선의무를 부담한다 할 것이고, 이는 자신의 귀책사유로 임대차 목적물이 훼손된 경우에는 물론이고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어 훼손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9다96984판결 , 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0다89876, 89883 판결 등 참조)”라는 대법원 판례를 설시한 후,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사고는 건물 4층 거주자가 고의적으로 가스폭발을 일으켜 발생한 것으로서, 임대인인 乙이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예방도 불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점, 이 사건 사고 발생 후 甲이 이 사건 건물 1층을 인도할 때까지 甲은 이사비용, 손해배상 등을 요구한 사실은 있으나 이 사건 건물 1층의 수리를 요구한 사실은 없는 점, 甲은 실제 2013. 12. 9. 어린이집을 폐업한 바 甲은 이 사건 사고 이후 더 이상 이 사건 건물1층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그 밖에 乙이 외부업체에 의뢰하여 이 사건 건물 주변 및 건물외벽에 대한 청소와 정리를 한 점 등을 종합하면, 乙이 수선의무를 불이행하였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하며 甲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3. 해설
이 사건에서와 같이 제3자인 가해자가 고의로 가스배관을 절단하여 가스폭발 사고가 발생한 경우라 하더라도, 그 사고로 인하여 임차인이 계약에 의하여 정해진 목적에 따라 임대차 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없는 경우라면 임대인은 귀책 여부를 불문하고 그에 대한 수선의무를 부담한다.
본 사안에서는 임대인에 대한 수선의무 발생을 전제로 하여, 과연 임대인이 그러한 수선의무를 불이행하였는지가 쟁점이었는데, 여러 사정에 비추어볼 때 임대인인 乙은 수선의무를 불이행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다.
방론으로, 甲은 왜 가해자가 아닌 임대인인 乙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였을까? 아마도 가해자는 자력이 없는 서민이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물론 민사상의 자력 여부와 관계 없이, 가해자는 이 사건 사고 발생으로 인한 형사책임은 별도로 진다). 즉, 甲은 이 사건 사고 발생으로 인해 분명히 자신에게 피해가 발생하였는데 이 책임을 무자력자인 가해자에게는 물을 수가 없으니, 자력이 있는 임대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불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되어, 임대인으로부터 손해배상을 받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이처럼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는 상대방, 즉 피고를 누구로 정하느냐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자력의 유무, 책임의 발생여부 및 그 범위, 승소 가능성 등. 만일 甲이 임대인이 아닌 보험회사(위 건물의 화재나 가스사고 발생을 대비하여 보험을 가입한 경우) 또는 해당 지역민의 안전과 재산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