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쾌적한 충전시설을 갖추고 있는 수도권의 의료용고압가스충전소.

의료전용 충전시설 속속 추진…일부 충전소는 아예 포기하기도

‘의약품을 제조한다’는 사업자 인식변화 절실
막대한 비용 추가발생 일부선 아직도 망설여

[가스신문=한상열 기자] 최근까지만 해도 국내 고압가스업계에서는 의료용고압가스를 의약품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고압으로 충전된 가스를 병원에 납품하는 정도로 알고 지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정부가 이미 의료용고압가스를 대상으로 GMP(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제도를 적용함으로써 의료용가스도 그 기준에 적합해야 한다. GMP 적용과 함께 의료용가스 제조 및 충전소들도 이제는 제약회사의 수준에 버금가는 품질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GMP에 맞춰 의료용가스를 제조하거나 충전하기 위해서는 설비보완, 인력충원 등에 따른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산업용가스와 비슷한 품질수준으로 의료용가스를 제조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게 관련사업자들의 주장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의료용가스사업자들이 GMP 준비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본지는 내년 하반기 의료용가스 GMP의 본격 적용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고압가스메이커 및 충전소들이 GMP 준비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등의 갈림길에 서 있는 관련사업자들의 다양한 의견 청취와 함께 현재 충전소들이 GMP 준비를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하는지 살펴보고, GMP가 차질 없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그동안에도 아무런 문제없이 의료용고압가스를 공급, 사용해 왔는데 왜 이제 와서 이렇게 까다로운 GMP를 적용해야 합니까. GMP를 준비하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필요하지만 산소, 질소, 이산화탄소, 아산화질소 등 의료용가스를 제조하면서 GMP를 유지하려면 기존의 제조원가를 반영, 출하해서는 채산성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충전소는 GMP준비를 해야 할지, 포기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경기남부지역의 한 의료용가스충전사업자가 GMP 적용을 앞두고 하소연 섞인 말을 하고 있다.

의료용가스 GMP가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 적용됨에 따라 이제 준비기간이 1년도 채 남지 않게 됐다. 일부 의료용가스 제조 및 충전업체들은 GMP인증 준비로 매우 바쁘지만 이 사업자는 GMP 준비를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넋두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올 연말까지 전국의 의료용가스 제조 및 충전업체들을 대상으로 GMP 평가를 집중적으로 실시한다는 계획이어서 더욱 빠르게 속도를 내는 상황이다. 전국의 6개 지방청은 각각 10여개 안팎의 의료용가스 제조 및 충전소를 선정, GMP 인증을 앞당기기 위한 행정지원 및 평가를 서두르고 있다.

이제 실제로 GMP 인증을 받겠다는 계획을 세운 충전소들은 활발하게 진행하는 분위기다. 산업용가스와 의료용가스를 합한 연간 매출액 100억원이 넘어서는 곳은 의료용가스 GMP인증 획득 계획을 적극적으로 세워 추진하는 편이다. 하지만 연간 매출액 50억원 안팎의 충전소들은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중견 고압가스충전소들은 이번 기회에 의료전용 충전소 설립을 추진해 눈길을 끈다. 수도권의 몇몇 충전소들은 기존의 충전시설과 별개로 의료전용 충전시설을 증설하는가 하면 아예 의료전용 충전소를 신설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기존 산업용가스충전시설과 병행 사용할 경우 관리가 어렵다는 판단과 함께 당분간 의료전용 충전소가 속속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의료용가스 수요의 한계성으로 인해 계속해서 늘어나지는 못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GMP가 본격 적용되는 시점인 2018년부터는 의료용가스 제조를 하지 않겠다는 충전소들이 더 많다. GMP 적용으로 인해 의료용가스업계에 큰 물결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로 앞으로 의료용가스업계는 가격경쟁에 이어 품질경쟁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업계 일각에서는 GMP 적합판정서 획득 여부에 따라 경쟁업체를 대상으로 고소고발도 잇따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눈높이 맞은 현장지도 식약처, 간담회서 강조
제조원가 상승에 따른 보험수가 인상도 절실

▲ 아산화질소가 충전된 용기. 아산화질소제조분야의 GMP는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컨설팅 도움 받는 곳 많아

산업용가스메이커들은 이미 전문컨설팅을 통해 GMP를 준비하는 한편 관련부서의 직원들을 통해 직접 추진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의료용가스충전업체의 경우 GMP 제도가 도입되는 시점이다 보니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해 컨설팅의 도움이 없이는 GMP를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내로라하는 의료용가스 전문공급업체들도 컨설팅의 도움을 받고 있는 걸 봐도 GMP를 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용가스업계에서는 GMP 가운데 KP(대한약전), USP(미국약전), EP(유럽약전), JP(일본약전) 등을 선택할 수 있는데 업계에서는 아직도 어느 약전을 적용할지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의료용가스의 공정서 규격을 서로 비교해 각각의 가스마다 적용하면 될 것이다. <표1 참조>

이와 관련 의료용가스 GMP인증관련 전문컨설팅업체인 프라이즈영 김영 대표이사는 “현재 GMP를 준비하는 충전소들은 산소, 이산화탄소 등에 대한 시험방법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면서 “KP, EP, JP, USP 등의 시험방법 선택에 따라 분석기기 구입비 등에 큰 차이를 보이므로 전문가와 함께 상의해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GMP 준비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분야는 아산화질소(N₂O) 전문제조업체들이다. 현재 경기 및 충북지역에 소재한 N₂O제조공장은 이미 GMP 준비가 상당히 진행됐다.

이에 반해 이산화탄소메이커들은 GMP 준비가 저조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부 탄산메이커들은 식음료용 탄산제조허가 및 식품첨가물 제조허가 등을 받아 공급한 경험이 있어 GMP 인증을 어렵지 않게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식약처 GMP 설명회 인기

올 하반기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주최하는 의료용가스 GMP 설명회에 많은 종사자들이 참석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식약처는 지난 7월 13일부터 9월 7일까지 6개 지방식약청과 공동으로 GMP 설명회를 다섯 차례에 걸쳐 실시했다.

특히 식약처 서울지방청 및 경인지방청은 7월 19일 관할 의료용가스제조(충전)업체를 대상으로 합동설명회를 개최해 관심을 끌었다.

식약처 의약품품질과의 정명훈 주무관은 의료용가스 GMP도 조직문화를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회사의 대표자가 작업자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GMP를 잘 수행할 수 없으므로 자체적으로 GMP위원회를 운용하는 것이 좋고, 작업자에게 교육을 실시한 후 평가도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주무관은 또 문서가 없으면 GMP를 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GMP는 과학과 증거로 이뤄진 시스템으로 계획서, 시험계획, 밸리데이션 등을 통해 리포트가 나와야 한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특히 문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추적관리하고 개선하는 것이며, 공정밸리데이션의 경우 제조에 비해 충전은 간단하게 실시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으며 절차서(SOP) 목록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시험 등을 위탁할 경우 계약서 원본을 잘 관리해야 하며, 세부적인 내용을 표준서 안에 연결시켜줘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밖에 회사마다 일관된 문서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므로 관리번호 부여 등을 통해 세부문서를 잘 만들어야 하고 원본과 복사본을 구분,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식약처는 분석과 관련해 순도만 보는 게 아니라 녹 등의 이물관리도 한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관련단체와 간담회도 활발

식약처는 고압가스충전사업자 관련단체와의 소통도 활발히 이뤄졌다. 지난 7월 19일 식약처는 고압가스합연합회 회원 10여명을 대상으로 의료용가스제조(충전)업체 간담회를 개최하고 의료용가스 GMP 제도에 대한 관련업계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기도 했다.

간담회에는 식약처 의약품품질과 김명호 과장 및 정명훈 주무관, 식품의약품평가원 의약품심사조정과 고용석 연구관 등을 비롯해 전국의 각 지역 의료용가스충전업체의 실무자들이 참석,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김명호 과장은 GMP를 준비와 관련한 개선점을 건의할 경우 타당하다고 인정되면 적극 반영하겠다면서 행정지원 등에 대해 업체들이 요청하면 최대한 돕겠다는 점을 언급했다. 또 의료용고압가스 사업자 및 종사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현장지원을 하는 등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것도 재차 밝혔다.

 

보험수가 인상 등 개선 시급

의료용가스 GMP 인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설비보완 및 인력충원에 따른 비용도 적지 않게 소요된다. GMP가 본격 적용될 경우 가격인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품목은 고압용기에 충전해 출하하는 기체산소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난 2001년 한국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내놓은 ‘산소의 고시내용 변경에 따른 명세서 작성방법 등 안내’를 보면 기체산소 10ℓ에 10원을 받도록 명시해 놓고 있다.

여기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압축 기체산소를 충전할 수 있는 6㎥(내용적 40ℓ) 규모의 고압용기를 6000ℓ로 봐 이를 기준으로 보험수가를 적용하면 최고 6000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이 같은 기체산소의 상한금액을 적용, 지급해왔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현재 의료용가스시장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액체산소와 함께 기체산소를 끼워 판매하는 경우는 최고가인 6000원만 받기도 하지만, 기체산소만 판매하는 경우 6000원만 받아서는 도저히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 GMP를 적용할 경우 그 수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2만~3만원은 받아야 한다는 게 사업자들의 주장이다.

병원에는 내용적 4.6ℓ, 5.2ℓ 등 10ℓ 이하의 소형 고압용기를 통해 공급하는 경우가 많아 용기 1개당 반영되는 제조원가는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GMP 적합판정서 획득 외에도 의료용가스업계가 풀어가야 할 가장 큰 과제다.

의료용가스 GMP 시행에 따라 품질 향상을 위해 사업자들의 비용부담이 추가적으로 이뤄졌다면 의료용가스에 대한 건강보험수가의 조정도 뒤따라줘야 한다는 게 의료용가스사업자들의 한결 같은 주장이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므로 가격상승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에서도 이러한 점을 인식해 의료용가스와 관련한 보험수가에 세심한 관심을 갖고 적극 개선해주기를 의료용가스업계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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