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LNG시장 거래방식 활성화, 한국도 가스정책 검토 필요

직수입자 통한 자가소비 증가
2020년까지 전 세계 LNG 생산량 대폭 증가
미국과 호주 중심 셰일가스 강세

 

1986년 최초의 LNG 수입이 이루어진 이래 30년 간 우리나라의 가스 산업은 우리 경제의 성장과 함께 급속한 팽창을 보였다.

천연가스는 2015년 기준으로 국내 1차 에너지 공급에서 15.3%를 차지, 석유와 석탄에 이어 3번째로 중요한 에너지원의 위치를 점하였다. 천연가스의 비중이 2000년에는 석유, 석탄은 물론 원자력에도 뒤지는 9.8%에 머물렀으니 비교적 최근까지도 천연가스 소비가 빠르게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맞추어 LNG 수입량도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연간 5.4%씩 늘어나면서 세계 2위의 수입국이라는 위치를 공고히 하였다. 이처럼 급성장하는 천연가스 수요에 국내 가스 산업계는 도입 계약, 인프라 건설 등의 방면에서 적기에 대응함으로써 수급 불안정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건실한 성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최근의 천연가스 수요는 오히려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LNG 수입량은 2013년에 약 4천만 톤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였으며 동년 1차 에너지원 구성에서도 천연가스의 비중이 18.7%로서 정점에 도달하였다. 2013년에는 위조 부품이 사용된 원자력 발전설비의 가동이 2분기 중에 중단되고 이를 LNG 발전이 대체하면서 하절기 천연가스 수요가 늘었고 원료비 연동제 중단으로 도시가스의 상대 가격이 낮아지면서 산업용을 중심으로 한 도시가스 소비량도 급격히 불어난 시기였다. 이처럼 일시적인 수요 증가 요인이 제거되면서 천연가스 소비가 급락하여 LNG 수입량은 2014년 3,711만 톤, 2015년 3,310만 톤 선까지 하락, 연간 –8.5%의 감소세를 보였다.

단기적 수요 감소 못지 않게 가스 업계의 우려를 자아내는 점은 장기적으로도 천연가스 수요가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2015년 말에 발표된 제12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의 수요 전망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2029년 천연가스 수요는 현재와 거의 같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2029년의 우리나라 천연가스 수요는 3,465만톤으로서 2014년보다는 200만톤 가까이 낮고 2015년보다는 100여만 톤 높은 수준이다.

 

2029년까지 연평균 증가율 -0.34%

구체적으로는 발전용 수요가 2014년부터 2029년까지 연간 4.17%의 하락세를 보이는 반면, 도시가스용 수요가 산업 및 상업 부문을 중심으로 연간 2.06%씩 상승하여 발전용 수요 감소를 상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인구와 국가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줄어들고 산업 구조 변화와 에너지 효율 향상으로 경제 성장과 에너지 소비의 탈동조화(decoupling)가 본격화되면 도시가스 수요 증가가 전망치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물론 안전성 문제와 온실가스 배출량 문제로 인하여 발전 부문에서 원자력 발전과 석탄 화력 발전의 비중이 낮아지고 천연가스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가스 수요가 이미 성숙기에 진입하였다는 징표는 곳곳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국내 가스 시장의 구조도 점점 다각화하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다. 신규 가스 발전 용량 가운데 상당 부분은 가스공사에 공급 신청을 하는 대신 직수입을 통해 LNG 자체 조달에 나설 방침이다. 그리고 늘어나는 직수입 수요에 발맞추어 두 번째 민간 인수기지인 보령 LNG터미널도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사실 상 가스공사가 독자적으로 국내 가스 수급을 관리하던 체제가 약화됨에 따라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효과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시장의 필요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국제 LNG시장 수요자 중심 변화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면 LNG 국제 거래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LNG 시장이 소수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대규모 장기 계약으로 결합된 폐쇄적인 사교 클럽과 같은 느낌이었다면 최근의 변화 방향은 단골과 뜨내기 손님이 북적거리고 어제의 구매자가 오늘은 판매자가 되기도 하는 그야 말로 시골 5일 장터와 비슷한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추동하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국제적인 LNG 공급 과잉 현상이다. 미국과 호주가 각각 셰일가스, 탄층 가스(coal-bed methane)라는 비전통가스 생산에 기반한 LNG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2020년까지 전 세계 LNG 생산 용량은 대폭 늘어날 것이다. 2015년 전 세계 LNG 생산량 2.4억 톤의 절반 정도인 1.2억 톤의 신규 생산 용량이 2015년부터 2020년 사이에 가동을 시작할 예정인데 대부분이 미국과 호주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에 전 세계 LNG 소비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동북아 지역은 중국의 경제 성장 감속과 우리나라, 일본의 가스 소비 정체로 판매자들이 기대했던 수준의 소비 증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계약조건 완화 움직임

공급 과잉 상태가 2020년대 중반까지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협상력이 강해진 구매자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통적 LNG 계약의 특징인 유가 연동 가격, 15년 이상의 계약 기간, 실제 인수 여부와 무관하게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의무 인수 조항(take-or-pay) 등의 경직적 계약 조건이 있는 신규 계약에 대한 거부감이 수입국들 사이에 높아져 있을 뿐 아니라 기존 계약에서도 이러한 경직적 조건의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구매자들이 우선적으로 문제를 삼는 것은 목적지 조항(destination clause)으로서 자신의 선박으로 운송하는 경우에도 판매자 동의가 있어야만 정해진 하역항이 아닌 곳으로 배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은 재판매를 크게 제약하는 불공정 거래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매자들이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불가피한 이유도 있다. 많은 동북아시아 지역 LNG 구매자들은 자국 시장에서 수요가 예상만큼 늘지 않고 시장이 자유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안정적 판매를 장담할 수 없는 이중의 불확실성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하여 LNG 구매자들은 국내 수요가 자신들의 계약 물량을 밑돌 경우 구매량을 줄이거나 남는 LNG를 손쉽게 재판매할 수 있는 계약 조건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게다가 기존의 인수기지보다 저렴한 부유식 재기화설비(FSRU: Floating Storage and Regasification Unit)를 이용하여 LNG 수입을 추진하는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동 지역의 소량 고위험 구매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공급 과잉 시장에서 판매자들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존 구매자들의 협상력 강화 및 과잉 계약 물량 판매를 통한 판매자로의 변신, 신용 위험은 높지만 성장성이 있는 신규 구매자의 출현은 LNG 판매자들로 하여금 전통적 거래 방식과는 다른, 보다 혁신적으로 시장 수요에 응답하는 판매 전략을 강구하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매자와 판매자의 움직임은 국제 LNG 시장이 장기 계약으로 얽힌 조용한 시장에서 상품화된(commoditized) LNG가 자유롭게 거래되는 진정한 시장으로 변화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도 이젠 변화를 꾀해야

국내 천연가스 수요의 성숙 단계 진입과 시장의 다변화, 국제 LNG 시장의 공급 과잉과 유연한 거래 방식의 활성화는 우리 가스 업계가 과거 30년 동안 성공적으로 작동했던 사업 방식과 결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해가 다르게 늘어나는 천연가스 수요를 적기에 충족시키기 위하여 장기 계약 위주로 구성된 국제 LNG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 가스 업계의 당면 과제이자 성장 공식이었다. 그러나 늘어나는 수요, 경직적 LNG 시장이라는 기본 전제가 바뀌고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도 바뀌고 그에 대한 해답도 바뀔 수밖에 없다.

미국, 서유럽 등 국내 가스 시장 발달된 나라에서 시장이 자유화된 계기를 살펴보면 지금의 우리나라와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 현물 거래가 아닌 장기 계약 관계 중심으로 작동하던 시장에 저렴한 가스가 유입되면서 수요자들이 기존 계약에서 이탈하려는 유인이 커지고 이를 제도적으로 수용하면서 거래 자유화와 가스 거래 허브의 발달의 기폭제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직수입사 증가, 과잉 공급에 따른 국제 LNG 가격 안정세 지속이라는 시장 환경에서 현재 금지된 시장 참여자 간 거래 허용, 직수입 허용 폭 확대 등의 요구가 지금보다 더욱 크게 분출될 수 있는 여건이 점차 갖춰지고 있다.

정부에서 지난 여름에 발표한, 2025년 도매 시장 개방을 포함한 장기적 정책 방향은 국내외 가스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외형적 성장의 수면 밑에 있던 시장 비효율성이라는 암초가 성장세 하락으로 인해 드러나면서 이를 더 이상 못 본 체 할 수 없는 만큼 LNG 수급의 안정성과 자유로운 거래를 통한 시장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을 쫓아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전력, 가스 시장 전면 자유화, 중국의 3대 국영 석유 기업에 의한 가스 시장 독점 구조 완화 등 주변국 가스 산업도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리 가스 업계도 정부의 정책 변화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새로운 지속 가능 성장 모델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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