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가스용품 유통, 가스사고로 이어져

고효율·친환경기기 보급정책 흐름에 뒤처져
검사 제외 가스밸브 가스안전 위협

[가스신문=박귀철·정두현 기자] 국내 가스기기 산업은 ‘고효율·친환경·에너지믹스’라는 키워드 속에서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맞아 고속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일반 가스보일러 대비 8~10% 열효율이 높은 친환경 콘덴싱(condensing) 보일러의 보편화, 산업용 가스냉난방기기에 적용되는 질소산화물(NOx) 저감형 가스버너 교체설치 추진, 국내 상용화 초읽기에 들어간 m-CHP(초소형 열병합발전시스템) 등과 같이 굵직한 이슈 속에서 기기시장은 빠르게 체질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정부의 고효율·친환경 에너지(가스)기기에 대한 보급 활성화 정책은 유럽, 북미, 일본, 중국에 비해 10년 이상 뒤처졌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대표적으로 유럽에서는 이미 지난 2015년 유럽연합(EU)의 ErP제도 시행으로 최저효율 86% 이상의 고효율 콘덴싱 보일러 설치가 의무화됐으며, 현재 유럽 전역에 깔린 보일러의 90% 이상이 콘덴싱 제품이다. 한국은 20세대 이상의 신규주택에 한해 콘덴싱을 설치토록 하고 있지만, 여전히 콘덴싱 보급률은 20% 미만으로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국산 보일러 제품들이 북미, 러시아, 중국, 유럽 등지로 역수출되는 등 한국의 보일러 콘덴싱 기술력은 세계 최상급인데 비해 국내의 보일러 판매구조는 콘덴싱보다 효율과 저녹스 성능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한 일반형 제품이 압도하는 모양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콘덴싱 전환(500만대 기준)에 따르는 난방에너지효율 제고, 대기환경오염물질 저감 등 순기능으로 파생되는 잠재적 경제편익은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세먼지 저감 및 에너지믹스의 대안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스냉방기기(GHP, 흡수식냉온수기)에 대한 정부 지원도 미온적이라는 지적이다.

가까운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불안정해진 전력수급 상황을 계기로 지난 2013년 에너지절약법을 개정, 동하절기 전기수요 평준화에 초점을 맞춰 가스냉방 보조금 지원을 대폭 강화했다. 가스냉방 보급을 통해 전력 수요를 낮춤으로써 에너지믹스 구현과 경제성 확보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복안이었다.

그 결과 일본의 경우 2014년 말 기준으로 가스냉방 보급실적은 총 11만건, 설치용량은 1280만RT를 넘겼다. 반면 우리나라는 해마다 가스냉방 설치·설계 장려금 지원을 통해 가스냉방시스템 활성화 정책을 펴왔음에도 불구, 지난해 가스냉방 보급실적이 1772대(용량 14.5만RT)로 일본 가스냉방 규모의 1% 수준에 그쳤다.

여기에는 바로 가스냉방 보급 확대의 핵심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정부의 가스냉방보조금 예산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매년 가스냉방 설치수요 대비 부족한 예산 탓에 미지급금이 누적되는 가운데, 관련예산 증액이 필요한 시점에서 올해(70억4900만원)는 오히려 예년보다 50% 삭감된 예산이 편성됐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가스냉방기기 보급 활성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스용품 안전 ‘사각지대’ 

국내에서 발생하는 가스사고는 기기 및 설비의 노후화로 인한 가스누출사고도 있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의 고의사고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고가 주방의 염화비닐호스 고의 절단사고로 지난해 LPG호스 2건, 도시가스호스 6건 그리고 올해 들어서도 LPG호스 1건, 도시가스호스 3건이 칼이나 가위에 절단됨으로써 가스폭발로 이어져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가 쉽게 절단하지 못하는 아연도금강판 재질의 자바라호스 사용을 의무화 할 필요가 있다. 전국에 자바라호스가 설치된 세대수는 굉장히 많지만 지금까지 단 한 건의 고의 절단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안전이 확보돼 있다는 것이다. 그밖에 가스호스 절단 시 차단할 수 있는 과류차단형 볼밸브도 개발, 가스계량기 전단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액체산소 및 질소, 아르곤 등의 초저온 저장탱크와 탱크로리에 부착되는 초저온 밸브, LNG기지 등에 설치되는 게이트밸브와 체크밸브가 아무런 검사도 받지 않고 설치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제품이 중요한 가스시설에 설치되고 있다는 것은 정부와 관련 검사기관, 가스업계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하루빨리 검사기준을 만들어 가스안전공사 검사품 또는 KS제품만이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밖에 불법 나사식 가단주철제 관이음쇠의 유통도 쉽게 근절되지 않고 가스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나사식 관이음쇠(KS B 1531)는 건물의 내부에 설치되는 가스배관(강관) 사이에 연결되는 중요한 부품으로 대부분이 중국에서 반제품으로 들어와 국내 제조업체에서 가공 또는 완제품으로 들여오고 있지만 일부 몰지각한 업체들은 아직도 제조사명을 표시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저가에 불법 유통하고 있다.

관계 당국에서는 민원이나 언론의 보도 시 형식적인 시판품 조사와 솜방망이로 행정처분을 내리다 보니 불법 제품이 뿌리 뽑히지 않고 가스시설에 설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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