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사업을 하다 보면 당장 현금 융통이 어려워서 약속어음을 발행하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문제는 상대방의 요구에 의해 집행력 있는 약속어음 공정증서를 발행해준 경우이다. 일단 집행력 있는 약속어음 공정증서가 발행이 되고 위 약속어음상에 기재된 기한까지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게 되면, 채권자는 곧 바로 채무자의 책임재산에 대해서 모든 종류의 강제집행에 착수할 수 있다. 확정판결에 준하는 효력이 있는 것이다. 채무자가 뒤늦게 위 약속어음 발행 과정 중의 부당함을 알게 된 경우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어떻게 방어할 수 있을까?

 

2. 사실관계

乙은 甲이 소유하고 있는 빌딩의 1층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위 빌딩이 곧 경매에 부쳐지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에 乙은 甲을 찾아가서, 빌딩이 경매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 때문에 손님이 끊겨서 영업도 되지 않고 매출도 급감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빌딩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는 경우 자신이 투자한 인테리어 비용 상당 금 4억 원을 지급해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집행력 있는 약속어음 공정증서를 발행하여 줄 것을 甲에게 요구하였다. 당시만 하여도, 빌딩이 경매로 넘어가지 않을 것을 자신하였던 甲은 乙이 제시한 인테리어 내역 을 자세히 살피지 않은 채 乙의 말을 믿고 금 4억 원에 대한 집행력 있는 약속어음 공정증서를 발행해 주었다. 그 후 위 빌딩은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고, 그 즉시 乙은 채권추심업체를 통하여 위 집행력 있는 약속어음 공정증서에 기해 甲 소유의 부동산, 예금채권, 주식, 급여채권 등에 동시다발적으로 강제집행을 실시하였고, 甲은 그로 인해 순식간에 신용불량자가 되었음은 물론 모든 신용카드와 교통카드까지 정지되어 일상 생활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甲은 우연히 乙이 운영하던 미용실에서 일했던 직원을 통해 乙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당시 빌딩이 곧 경매에 부쳐진다는 사실은 직원들조차 몰랐기 때문에 손님들이 이를 알았다고 보기는 어렵고(가사 손님들이 이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빌딩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과 당장 자기 머리를 커트하고 파마하는 것의 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매출이 급감한 실제 이유는 乙이 복수의 여직원을 성추행한 것이 문제가 되어 대다수의 직원이 퇴사를 하였기 때문이고 그러한 사실이 미용업계에 소문이 나서 乙이 추가로 직원을 고용하는 것조차 어려워져서 영업이 될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실제로 乙이 인테리어에 투입한 비용은 4억 원이 아닌 3억 원 남짓이며, 甲에게 제시하였던 4억 원짜리 인테리어 내역서는 乙의 지시에 의해 허위로 꾸며진 서류라는 것이었다.

 

3. 방어 방법

위 사안에서 甲이 취할 수 있는 방어 방법은, i) 우선 위 약속어음 공정증서가 乙의 기망으로 인해 과다한 액수로 잘못 작성된 것이므로 그 초과부분을 사기에 의한 취소 내지 착오 취소를 한다는 내용(실제 청구취지는 ‘금 OO원을 초과하는 범위의 어음공정증서에 기한 강제집행을 불허한다’는 식으로 기재하게 된다)의 청구이의의 소를 먼저 제기하고, ii) 위 청구이의의 소에 기해 강제집행정지신청을 하는 것이다(그렇게 해야 부동산 등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을 일단 막을 수 있는데, 강제집행정지신청은 청구이의의 소가 제기된 상태에서만 할 수 있다). iii) 만일 강제집행정지결정만으로 부족하거나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금융기관으로부터의 기한이익상실통지가 대표적인 예이다)에는 강제집행”취소”신청을 해야 한다.

 

4. 소송 경과

필자는 지난 1편의 사안에서 甲을 대리하여 법원으로부터 강제집행정지결정 및 취소결정(일반적으로 강제집행정지가 아닌 취소결정을 받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을 모두 받아내어 일단 甲의 책임재산이 강제집행으로 소멸되는 것을 막았고, 청구이의의 소에 있어서는 乙이 실제로 지출한 금 3억 원 상당만 甲이 지급하는 내용으로 결론이 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덧붙여 우리가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종국판결로 가기 보다 조정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소송 시작 전부터 甲에게 주지를 시켰다(일반적으로 기망에 의한 사기 취소는 법률적으로 인정되기가 매우 어렵고, 따라서 법리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판결 절차로 가게 되는 경우에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내용의 승소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소송 과정에서 여러 부당한 사정들을 최대한 재판부에 현출시킨 다음, 조정 절차로 가서 우리가 원하는 결론을 이끌어내자는 전략이었다).

 

5. 법원의 판단

위 전략대로 소송을 수행한 끝에,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15가합36822 사건에서 “원고와 피고가 작성한 어음공정증서에 기한 채무는 3억 1,000만원이 존재함을 확인한다. 피고는 원고로부터 위 금원 전액을 지급받은 즉시 어음공정증서에 기한 모든 강제집행신청, 가압류신청을 취하하고 그 각 집행해제신청을 하고, 피고는 원고에 대하여 원고가 강제집행취소신청 사건에 관하여 제공한 담보의 취소에 동의하고, 그 취소결정에 대한 항고를 하지 아니한다.”라는 내용의 화해권고결정을 내렸고, 위 화해권고결정은 양 당사자의 이의신청 포기로 확정되었다.

 

6. 마무리하며

집행력 있는 약속어음 공정증서를 발행함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할 것이 요구된다. 일단 발행을 하게 되면 그 이후에 실시되는 강제집행 등을 방어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발행을 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법률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발행을 하는 것이 좋고, 발행 후에 강제집행 등으로 책임재산이 소멸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경우에는 즉각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그 피해를 최소화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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