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조금은 메마른 우리 가스산업에 문학의 향기를 불어넣고자 마련한 코너입니다. 가스업계 전 현직 종사자들의 좋은 작품(詩)이 많이 투고되기를 희망합니다.

 

 

넓은 광야에서 푸른 벼이삭이

젊음의 낭만을 구가할 때에도

처절하게 그리워했던 당신은

사랑의 아픔을 갖지 않으려

한 발 짝 다가서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지요.

 

성큼 다가오는 갈바람에

자신 삶의 무게에 못내 겨워

고개 숙이고 바람 따라 휘청거리자

새들이 구애하며

영글진 벼이삭에 입맞춤 할 때도

감미로운 멜로디에 취하고 또 취해도

당신은 홀로 그 자리에 서서

사랑스런 눈빛으로 지켜만 주었지요.

 

그것도 잠시일 뿐

속사정 알 리 없는 농부는

탈곡기로 모조리 베어 넘어뜨리고

볏가마니 싣고 걸어가는 황혼 속으로 사라지지요.

하지만 당신은 사랑스런 이들이 떠나가니

이별의 아픔을 감내하면서도

고단한 삶에 대한 체념 속에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 못하고

그냥 뒷모습을 바라만보고 있었지요.

 

눈보라가 밤새워 몰아치고

당신의 맨발이 꽁꽁 얼어붙어서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어도

내년 봄에 다시 찾아올 새들을 기다리며

홀로 그 자리에 서서

무심한 세월 속에 낡고 해진 추억을 기우면서

깊어가는 겨울밤을 하얗게 태우고 있지요.

 

이 제 항  詩人
.한국가스공사 前 강원지역본부장
.지필문학 제36회 신인공모전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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