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스안전공사 산안센터에 설치된 스크러버. 습식, 건식 등의 방식으로 독성가스를 처리해 이곳으로 내보낸다.

위험 상존, 잔가스 빠른 처리 위해선 지자체의 지원 시급

 

독성가스는 위험한 폐기물
잔량 따라 많은 비용 발생

독성가스용기 무단폐기 등
위험성 커 인식 제고 시급 

국내 설치·기술기준 없어
안전 위해 기준 제정 절실

[가스신문=한상열 기자] 그동안 국내 산업용 고압가스업계에서는 쓰고 남은 독성가스의 처리문제를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져 왔다. 특히 대학 실험실이나 민간 연구소 등에는 연구할 때 사용하던 독성가스를 연구실 한구석에 방치해두는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용기가 많아 그야 말로 “이름도 알 수 없는 폭탄을 껴안고 있다”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다.

독성가스가 남아 있는 용기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은 우선 엄청난 위험이 잠재해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처분하고 싶지만 그동안에는 처리할 곳이 마땅치 않아 항상 꺼림칙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독성가스 잔가스 충전용기를 하천 등에 버리는 등 골칫덩어리로 취급되면서 안전관리 사각지대로 방치돼왔다.

특수가스제조시설을 갖춘 메이커들의 경우 자사가 제조한 제품은 자체적으로 회수하는 등 어렵지 않게 처리해 왔다. 하지만 취급하지 않은 생소한 특수가스라고 한다면 위험성이 크므로 처리하기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별도로 가스마다의 특성에 맞는 처리시설을 갖춰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수 년 전부터 몇몇 사업자들이 독성가스 처리를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잔가스처리사업을 영위해오기도 했다.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의 ㈜에이에프티의 경우 특정회사의 잔가스를 주로 처리해 왔으며, 최근에는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또 충북 음성군 금왕읍의 GNT는 중부권에 소재한 특수가스메이커들이 의뢰하는 잔가스용기를 처리해 왔으며, 최근에는 그 주인이 경기동부지역의 한 산업용고압가스충전사업자로 변경돼 운영되고 있다.

이밖에 지난해 하반기에는 충북 괴산군 대제산업단지에 ㈜에이엠테크가 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에 관한 법률 제33조 제1항에 따라 폐수배출시설의 설치신고를 한 후 독성가스 잔가스처리사업을 개시했다.

▲ 위험성이 큰 유해화학물질인 포스핀(PH3)와 알진(AsH3)을 처리하는 가스공급시스템.

산안센터 외 민간업체 3곳

하지만 현재 국내에는 독성가스 잔가스처리시설과 관련해 고압가스안전관리법에 따른 시설 및 기술기준조차 없는 상황이어서 실제 안전성을 제대로 확보해 설치했느냐 하는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특수가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 설치된 독성가스 잔가스처리시설은 가스법에 따라 설치된 게 아니라 단지 폐수배출시설의 설치신고에 따라 설치했을 뿐”이라며 “독성가스 잔가스를 처리하는 작업은 그 어느 작업보다 위험이 따르는데 잔가스처리에 따른 시설 및 기술기준이 없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스안전공사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산업가스안전기술지원센터(산안센터)를 건립하고 독성가스 잔가스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산안센터는 지난해 말 준공, 올해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나서고 있다.

가스안전공사는 독성가스 잔가스처리사업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몇 차례에 걸쳐 독성가스 잔가스처리사업을 안내하는 행사가 열었다. 특히 지난 3월에는 특수가스제조업체 및 사용업체의 실무자를 산안센터에 초청, 가스의 성질에 따른 각각의 독성가스 처리설비를 직접 보여주는 등 현장투어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특수가스업계 일각에서는 가스안전공사의 경우 총 23종의 가스만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 정작 내용물을 알 수 없거나 밸브가 고착된 용기 등 비정상적인 용기를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독성가스 잔가스처리사업이라는 게 처리시설을 여러 곳에 갖췄다고 해서 곧바로 시장이 열리지 않는 듯하다. 이는 쓰고 남은 독성가스용기가 위험하더라도 보관하고 있으면 비용이 들어가지 않지만, 처리하려고 하면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독성가스 잔가스처리사업은 영리목적이기도 하나 위험성을 제거하고 안전을 확보한다는 취지의 공익적인 측면이 더 크다. 가스안전공사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막대한 시설을 갖춘 것도 바로 이러한 점이 고려된 결과하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숨어 있는 독성가스 잔가스용기를 양지로 끌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지혜롭게 풀 수 있을까.

독성가스 잔가스용기는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폐기물이다. 대기환경에 좋지 않은 가스가 들어 있을 수도 있고,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스가 들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하루 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특수가스업계 관계자들의 한 결 같은 목소리다.

 

▲ 가스안전공사 산안센터에서 독성가스 잔가스를 처리하기 위한 각종 가스배관.

비용문제로 물량 의뢰 적어

현재 쓰고 남은 독성가스 충전용기가 가장 많을 것이라고 회자되고 있는 곳은 바로 대학의 공학관 내 실험실, 민간기업 및 정부산하 연구소, 고압가스 충전 및 판매소의 가스용기보관실 등이다.

특히 대학 실험실은 석·박사 과정의 연구원들이 연구과제를 마친 후, 사용하던 용기를 처리하지 않고 떠나는 경우가 많아 가스명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용기가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

또 고압가스 충전 및 판매소의 용기보관실에도 수요처를 대상으로 공급해 사용한 후 회수한 용기를 보관하는 경우가 많은 데 비용문제로 폐기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수도권 소재 고압가스충전회사의 한 관계자는 “고압가스용기보관실에 쌓여 있는 용기가 허가품목이 아닌 경우도 있어 더욱더 세상 밖으로 나오기 힘들다”면서 “이처럼 불편한 진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중부지역의 한 독성가스 잔가스처리사업자는 “현재 가스안전공사가 책정한 독성가스 잔가스처리비용으로는 잔가스용기를 쉽게 내놓지 않을 것”이라면서 “위험성이 큰 폐기물의 경우 비용이 엄청나게 소요되므로 관할 지자체가 나서 독성가스 잔가스처리에 따른 비용 일부를 지원해주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부 메이커들이 의뢰하는 독성가스용기는 공병이 아니라 실병인 경우가 많아 실제 처리비용을 더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 일부에서는 위험성이 상존해 있는 독성가스 잔가스 충전용기를 보다 빠르게 처리하려면 정부가 나서 적극적으로 단속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은 오히려 잔가스 충전용기를 더 깊이 숨길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가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특수가스업계에서는 보다 실효성 있는 잔가스처리장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를 테면 오래된 용기의 밸브가 고착돼 있는 경우 사람이 작업하다 다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챔버와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로봇이 해체작업을 할 수 있도록 로봇을 이용한 기계설비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최근 독성가스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커지고 가스사업자들의 안전관리 수준도 크게 향상되면서 머지않아 가스공급업체들이 잔가스처리비용을 제품 값에 산입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가스안전공사와 함께 몇몇 민간업체가 앞장서 설비를 갖추고 잔가스처리사업에 나선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캄캄한 지하실에 먼지를 뒤집어쓴 독성의 잔가스용기가 밝은 빛을 받으며 안전하게 처리되기를 기대한다.

▲ AM테크는 스크러버 등 중화처리설비를 설치, 독성가스 잔가스를 처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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