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후된 가스계량기의 관리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가스신문=주병국 기자] 국내 도시가스 공급은 1972년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시도시가스사업소(현재 서울도시가스)를 시작으로 민간사 1호인 대한도시가스((주)봉명, 코원에너지서비스)가 공급 사업을 개시하면서이다.

1989년 12월 환경청은 서울 및 수도권지역 대기보전대책의 일환으로 서울시로 국한된 LNG사용대상지역을 수도권 15개 시·군으로 확대했고, 이어 1990년 9월부터 서울지역 아파트에 LNG를 사용하도록 관련법까지 마련되면서 사실상 도시가스가 확대 공급됐다.

이처럼 국내 도시가스 보급은 1972~ 1980년 태동기를 시작으로 1990년~2000년 급성장기, 2001~2013년 성숙기를 거쳐 현재는 저성장의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도시가스 보급과 더불어 관련 산업의 기술과 설비 수준 그리고 안전관리시스템도 성장과 발전을 거듭했다. 이제는 도시가스가 전기와 상수도처럼 ‘공공성’이 요구되는 중요한 서민 에너지원으로 인식됐고, 이에 걸맞는 서비스 수준도 요구되고 있다. 

반면 가스사용량을 검침하는 계량시스템분야는 수십 년째 변화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미 전기와 상수도 그리고 지역난방까지도 계량시스템 선진화에 동참, 과거의 검침방식에서 탈피하고 있지만 정작 도시가스 분야만은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20년 전 막식계량기가 전체 96%

국내 도시가스 보급은 몇몇 지방지역을 제외하곤 사실상 ‘풀’ 상태로, 2018년 도시가스 전국 평균 보급률은 84%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세대수만 1780만호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국내 도시가스 보급이 정점을 찍은 반면, 계량검침관련 업무는 여전히 검침원이 직접 세대를 방문하고, 계량기기는 20년 전에 사용했던 기계(막)식 계량기가 대부분이다.

국내 가스계량기 설치현황을 보면(2016년 말) 전국 1718만 세대 중 기계식계량기(막식) 보급이 1656개, 디지털계량기는 40만개, 다기능계량기 세대수 13만 개, 누출점검용계량기는 9만개로 조사됐다.

20년 전의 기계식계량기 점유율이 전체 계량기 중 96.4%로 절대적인 수준이다. 이렇다보니 검침, 안전, 요금 등과 관련된 민원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 로드맵 수립 후 진척 없어 

이에 정부(산업통상자원부)는 2015년 1월 계량기 관련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 계량기 성능수준 저하, 관리·안전점검 불편 및 애로, 관리책임 모호, 공급계약 관리 미흡 등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가스계량시스템 선진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었다. 이 계획에는 단순히 계량기기만 업그레이드 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기 외 검침방식, 안전 그리고 유지관리까지 모두  시대변화에 맞게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정부는 계량시스템 선진화 방안으로 고성능 기기도입을 목표로 하는 ‘가스 AMI(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 보급 계획’을 지난 2016 7월 5일 발표 했다.

또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올해는 에너지신산업 육성방안 중 하나로 가스AMI분야에 5000억원의 자금을 투입, 2022년까지 1600만호의 기존 기계식 계량기를 원격검침계량기로 교체하여 전기와 더불어 가스분야까지 전국 스마트 그리드를 구현한다는 로드맵까지 발표했다.

이 같은 정부의 계획은 가스분야의 원격검침시스템 선진화를 통해 관련 민원을 해소하고, 검침 및 안전점검까지 품질 개선, 그리고  계량 및 IT 분야 등 관련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목표가 수반됐다.

정부가 수립한 계획에 따라 이행한다면 연간 320만대의 기계식 계량기는 다기능 원격검침으로 교체되어야 하지만, 현재 몇몇 회사만 시범 사업에 참여한 게 전부이며, 시범사업으로 보급된 다기능계량기기도 고작 1만대에도 못 미친다.

관련 사업은 사실상 안타깝게도 수년째 진척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계량시스템 선진화 더딘 이유는? 

더디기만 한 이유는 관련 사업에 정부의 정책의지가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막대한 투자비용이 소요되는 계량선진화사업을 통해 얻는 시회적편익 즉 기여도에 대한 자체 분석과 확신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도시가스업계도 “가야 할 길이지만 아직은 멀었다” 등의 입장이 대세를 이룬다. 지자체도 요금인상을 우려해 사실상 적극 나서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또 소비자는 편리성,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원하지만 비용부담은 ‘싫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이렇다보니 정부는 기존계획을 몇 차례 수정하는 등 신중론으로 전환하는 분위기이다. 이에 가스계량선진화 사업을 5개년 중기사업으로 전환하고, 추진 방식도 ‘先 제도개선, 後 고성능 기기 도입’으로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 바람직하지만 너무 더디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보다 득’ 많아 앞으로 가야 할 길  

계량시스템 선진화가 관련업계와 소비자 모두에게 순기능을 할 ‘가야 할 길’이라는 데에는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  

그 이유로 중요한 사항들을 꼬집는다. 바로 국내 도시가스 이용 가구의 대부분이 저가형 기계식(막식) 계량기를 사용하고 있고, 이는 부피단위(㎥)로 사용량을 계량해 현재 열량단위(원/Mj)로 요금을 부과하고 있는 산정방식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하절기 기온 차에 의한 사용량 집계 오류 및 요금산정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문제는 해마다 국회와 시민단체로부터 지적을 받고 있고, 현재의 계량방식과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도시가스업계와 산업의 발목을 잡는다.

또한 인력에 의존한 검침과 점검방식이 그대로 유지되어 원격검침 불가에 따른 사생활 침해와 2차 범죄 등 사회적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국내 가스계량기 산업은 지나친 가격경쟁으로 인해 설비 수준은 오히려 하향 평준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부문의 수출경쟁력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져 계량기 수출대상국은 개발도상국에 집중 되어 있으며, 주요 선진국의 고도화된 계량기가 국내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이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가스계량선진화는 추진되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소비자도 정확한 정보 제공시 필요성 공감

많은 소비자들은 공급사로부터 좀더 나은 서비스와 편의성을 제공받길 원한다. 여기에는 원격검침으로 사생활보호와 보다나은 고성능기기, 보다 정확한 요금지불도 포함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17년 조사한 자료를 보면, 가스사용 1000세대를 대상으로 계량시스템 선진화에 따른 사회적 편익을 연구한 결과 소비자와 공급자 그리고 관련 산업의 경쟁력 확보에 ‘계량기선진화’는 사회적 편익이 크다고 전망했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소비자가 계량시스템 선진화에 대한 인식시, 스마트 가스미터의 활용도에 긍정적인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 설문조사 응답자는 기존의 기계식 계량기보다 스마트 가스미터기기가 더 정확한 가스요금을 측정할 수 있다는 점에 73.0%가 동의했다.

또 응답자 중 사생활 보호가 가능하다에 82.5%, 가스사고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질문에 65.7%, 검침사고 예방을 할 수 있다는 점에 77.5%, 가스사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질문에 44.6%가 각각 동의했다. 결국 소비자가 계량시스템 선진화가 어떤 것인지,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해 정확한 정보 전달이 이뤄진다면 거부반응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부와 도시가스업계는 계량시스템 선진화에 따른 사회적 편익에 대해 대국민 홍보와 함께 정확한 정보전달에 노력을 해야 한다.

 

공급사측면에서도 ‘실보다 득’ 많아 

정부의 계량시스템 선진화 사업에 대해 도시가스업계는 비용부담에 따른 ‘원인자부담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바심’ 때문에 반대 입장이 크다.

이는 현재의 구조처럼 기본요금에 다기능 등 고성능계량기의 적정원가로 반영되면 반대할 이유가 없고, 계량검침 불신 해소라는 장점도 있어 정부가 제도적 장치만 확실히 마련하고, 지자체가 이를 준수한다면 당장이라도 관련 사업에 적극 동참할 의사가 있는 듯하다. 도시가스업계가 겪는 한해 체납료만 연간 1000억원 넘는 수준이다. 또 많은 계량기가 실내에 설치되어 있다 보니 고의성 체납세대와 미수금이 해마다 증가하며, 이로 인해 공급사의 부채 부담도 가중되고, 심지어 요금, 검침, 안전점검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고객센터에서도 악성 체납세대로 인해 요금 수납업무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선 제도개선, 지자체 이행’이 이뤄진다면 공급사들도 고의적 체납세대 감소, 검침 정확성 확보, 소비자 민원감소 등을 통해 계량시스템 선진화가 ‘실보다 득’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업계, 확고한 의지 갖고 제도개선 나서야

따라서 정부가 계량시스템선진화를 추진키 위한 보다 구체적으로 단계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한다. 무엇보다 계량기 관리 및 소유주체 변경을 위한 관련법 제․개정이다.

현재 계량기는 관련법 시행규칙 제2조(정의 5항)에 따라 사용자시설물로 분류되어 있어, 소유 주체와 비용부담은 소비자가 기본요금을 통해 부담하고 있고, 5년마다 재검정을 통해 최장 10년까지 사용하도록 관련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다만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공급사가 계량기의 관리와 유지보수, 점검 및 검침 등 다양한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계량시스템 선진화에 앞서 사용자시설물로 분류된 계량기를 공급자시설물로 전환하고, 원인자부담원칙에 따라 소비자가 비용부담을 하도록 관련법 개선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계량기 성능 및 재검기준 개선 △유무선 원격검침 및 고성능 계량기 필드 테스트 확대 △다기능계량기 표준화 △고성능 등의 계량기 적정가 산정 등도 반드시 정부가 챙겨야 할 과제들이다.

도시가스업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검침 관련 업무를 획기적으로 개선함은 물론 요금관련 민원 그리고 소비자의 사생활 보호, 업무의 편리성과 신뢰성 등을 한층 높일 수 있는 것이 바로 계량시스템 선진화인 만큼 더 늦기 전에 정부가 확고한 정책의지를 갖고, 대국민 공감대라는 토대 위에 관련업계와 함께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가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