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신문=유재준 기자] “오래 전 사람이 뭐 할 말이 있나요. 딱히 없지요. 후배 분들이 다들 잘 하고 계시는데요. 다만 천연가스 산업은 무게감이 있는 만큼 함부로 쉽게 생각하지 말고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점은 말하고 싶습니다.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대한민국 천연가스 역사의 산증인 중 한 명인 선우현범(86세) 前 한국가스공사 부사장은 세상 무서울 것 없는 고령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함을 유지한 채 입을 떼었다.

우리나라 천연가스산업 초기에 몸 담았던 선우현범 前 부사장의 인생은 글자 그대로 한국 천연가스 성장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 한다.

한국가스공사 설립 초기 1988년 4월부터 1993년까지 약 5년간 부사장을 역임하고 한국가스기술공업 초대 사장(현 한국가스기술공사), 대림엔지니어링 사장, 동북아에너지포럼 대표, (사)한국범아시아 천연가스파이프라인연구회 회장, 한국DME포럼 초대 회장(현 한국DME협회), 한국에너지공학회 회장(현 한국에너지학회) 등을 두루 역임했다.

‘우리나라 천연가스 산업의 역사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는 기자에게 선우현범 前 부사장은 10여 년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했던 자료라며 A4용지가 가득 든 서류뭉치를 건넸다.

“1980년대 당시 한국전력 기술개발부장으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지금 한창 이슈로 떠오른 태양광, 태양열, 수소 등 다양한 에너지원에 대해 당시에도 검토하고 연구를 할 때입니다. 석유 파동 등을 비롯한 국제상황 등을 고려해서 한전에서 액화천연가스 도입 사업추진계획안을 작성해 동력자원부에 제출하고 가스사업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지요.”

이후 한전이 LNG사업본부를 설치 운영하고 인도네시아에 해외사업소를 개설하고 평택화력발전소에 LNG건설사무소를 두어 LNG인수기지와 주배관 건설사업을 전담하게 된다.

“1983년 2월말까지 14차례나 LNG협상을 이어갔습니다. 국제에너지 전문 법률가, 수송전문가, 기술전문가 등 실무진이 구성돼 진땀을 빼며 협상에 임했습니다. 약 2년여에 걸친 협상이 타결되고 드디어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전 사장과 페르타미나 총재간에 최초의 LNG 도입계약이 체결됐지요. 무척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후 1983년 한국가스공사가 설립되면서 한전에서 수행하던 LNG사업 전체를 한국가스공사로 인계하고 계약이행업무와 건설공사, 그리고 한전 LNG사업본부에서 근무하던 간부 및 직원 대부분이 가스공사로 전직하게 된다.

선우 前 부사장은 이후 가스공사 기술국장을 맡게 되고 기술이사를 거쳐 부사장으로 근무하게 됐다.

“당시 사회나 기업문화는 지금에 비하면 경직된 분위기였습니다. 가스공사 역시 그런 분위기였지요. 근무하기 쉽지 않은 딱딱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한전 관련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만 복귀 명령이 떨어져서 가스공사에 다시 들어가게 됐습니다.” 천연가스 도입관련 업무를 추진하려면 ‘선우현범’이라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건의에 따라 다시 가스공사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선우현범 前 부사장은 당시 LNG라는 작은 씨를 뿌린 것이 현재 우리나라 천연가스 산업의 모태가 되었다는데 긍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인수의무조항(Take or Pay)이 설정돼 있는 천연가스산업의 특성 상 정부의 재정적 부담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LNG도입이 성사된 것은 에너지다원화가 필요했던 국내의 에너지 수급상황은 물론 당시 도입사업에 구성원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 영향 등을 고려할 때 천연가스 산업은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그 중 셰일가스 도입이 천연가스 산업의 중심축이 될 것 같습니다”며 “한국 천연가스산업이 지금처럼 성장하는 데 작게나마 힘을 보탰다는데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친 후: 현재 선우현범 前 부사장은 지병으로 투병 중에 있습니다. 몸이 불편한 가운데도 취재에 응해 주신 선우현범 前 부사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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