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관계
甲은 막강한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자로, A회사의 경영권을 찬탈할 목적으로 A회사의 지분을 대거 사들였고, 그 결과 A회사의 과반 지분을 확보한 최대주주가 되었다. 최대주주가 된 甲은 곧바로 법적 절차를 거쳐 A회사의 주주총회를 개최하였고, 위 주주총회에서 A회사의 원래 오너이자 대표이사였던 乙 및 재무이사 兵을 각 해임하고, 자신을 신규 대표이사로 선임하였다(위 경영권 분쟁에 대해서는 추후 기회가 있을 때 다시 상세히 다루겠다).
A회사를 장악한 甲은 기존 대표이사였던 乙을 각종 배임 및 횡령 혐의로 형사 고소하기 위하여(이는 경영권 분쟁 및 적대적 M&A에서 많이 쓰이는 수법이다) 乙이 대표이사로 재직할 당시 작성하였던 각종 서류 및 계약서(이하 ‘이 사건 서류’라 한다)들을 자신에게 반환할 것을 요구하였고, 乙 이 이를 거부하자, 乙 및 재무이사였던 兵을 상대로 이 사건 서류를 甲에게 인도하라, 위 의무 불이행시에는 이행 완료시까지 1일당 금 1억 원을 지급하라(위 후문 기재를 ‘간접강제’ 신청이라고 한다)는 취지의 문서인도 단행가처분 신청을 하였다.
다급해진 乙 과 兵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며 필자를 찾아왔다. 위 문서인도 단행가처분 신청을 어떻게 방어할 수 있을까?

 

2. 쟁점
본 칼럼의 애독자라면, 필자가 2018. 5.에 게재하였던 ‘부동산인도 단행가처분’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억할 것이다. 단행가처분의 기본적인 요건 등에 대한 설명은 위 칼럼의 내용을 참조해주기 바라고, 이하에서는 위 사안에서의 쟁점 및 방어 전략에 대해서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우선, 위 사안에서 甲이 신청한 문서인도 단행가처분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요건사실이 “고도로 소명”이 되어야 한다. 첫째 이 사건 서류에 대한 소유권이 甲에게 있을 것, 둘째 현재 乙과 兵이 이 사건 서류를 점유하고 있을 것이 그것이다. 甲이 A회사의 신규 대표이사로 취임하였고 乙과 兵이 해임된 이상, 회사와 관련된 서류의 소유권이 이제 甲에게 있다는 점 내지 적어도 乙과 兵은 더 이상 이 사건 서류를 적법하게 점유할 권한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없다(위 주총의 취소 가능성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결국 남은 것은 현재 乙과 兵이 이 사건 서류를 점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인데, 필자는 위 두 번째 요건사실에 대해서 甲이 고도의 소명에 성공하는 것을 좌절시키는 것을 위 소송에서의 승소 전략으로 삼았다(겸손하게 말해서 ‘승소’ 전략이지, 내심은 ‘필승’ 전략이었다).

 

3. 법원의 판단
법원은(개인정보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법원명 및 사건번호 기재는 생략한다) 결정문 서두에서, 필자가 주장서면(가압류 및 가처분 등의 보전소송 사건에서 당사자가 제출하는 서면은 준비서면이 아닌 주장서면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그다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지 않다)에서 개진한 내용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사건과 같이 채무자들에 대하여 문서인도의 작위의무를 부담시키는 이른바 만족적 가처분에 있어서는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에 대하여 고도의 소명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라는 내용을 그대로 붙여 쓴 다음(위 판시에서 말하는 ‘만족적 가처분’이 바로 ‘단행 가처분’을 뜻하는 말이다), 정확히 필자가 의도하였던대로 “채권자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채무자들이 이 사건 서류를 점유하고 있다는 점이 소명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며, 甲의 문서인도 단행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하였다.

 

4. 마무리하며
필자가 작년 5월에 게재하였던 칼럼과 이번 칼럼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면, 단행가처분 제도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필자가 제기한 단행가처분 신청 사건은 모두 인용 결정을 받았고, 상대방이 제기한 단행가처분 신청은 모두 기각시켰다. 창을 쓸 때는 어디를 어떻게 찔러야할지를 정확히 알고 찌르면 이길 수 있다. 반대로 방패를 사용해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야 할 때는 상대방이 공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모두 예측하고 그 공격의 허점을 노려 집중적으로 방어하면 역시 그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까지는 아니어도 십중팔구는 이길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칙이다. 이제 어느덧 기해년의 처서가 지나고 가을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풍년의 곡식을 추수하는 가을 농부의 마음처럼 독자들의 마음도 풍성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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