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변리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전 변리사회 회장

지하철이나 택시에서 손전화기를 두고 내린 적 있습니까? 전화기에는 중요 정보가 담겼고, 주로 사업에 활용하는 것이라 없으면 참 곤란하다. 전화해도 받지 않고, 좀 지나면 전원이 꺼져 있다. 폐쇄회로 영상을 뒤지고, 경로를 추적하여 겨우 누군지를 찾아낸다. 남의 전화기를 가져간 것이 범죄일까?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전화기를 잃어버리면 본인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이렇게 잃어버린 물건을 가져가면 형법 360조 ‘점유이탈물 횡령죄’가 된다.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돼 있다. 작년 11월 29일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에서 보조전지를 충전하다가 하도 멀미를 심하게 하는 통에 잊고 내렸다. 해운사로 이리저리 전화해 봐도 추적할 수 없었고, 다음날 되돌아갈 때 직원에게 얘기했더니 ‘청소하면서 발견한 것은 없다’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들었다. 나도 폐쇄회로에 기록된 영상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다가 접었다. 직원이 형사 범죄로 인식했다면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잘못했을 때에는 대개 민사 책임을 진다.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합의하면 좋겠지만, 상대방이 오리발을 내밀면 참 풀기 힘들다. 민사절차로 해결하려면 소송제기, 변론, 판결, 강제집행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형사죄로 고소하면 경찰이나 검찰이 조사해서 처리하니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이른바 민사사건의 형사사건화다.

우리나라에는 형사 사건이 많은 것 같다. 검찰청 통계를 보니 고소사건이 2019년에 65만여 건이 생겼다. 일본이랑 비교해 보면 몇 배가 된다는 둥 하면서 국민성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악의를 가진 경우를 빼고는 사건을 즐기는 사람이 있겠는가 싶다. 사건이 생겼으니 빨리 해결하려는 욕심에서 나온 일일 것이다.

형사든 민사든 사건에 휘말리면 참 힘들다. 민사 사건에서 재판 날짜만 잡혀도 며칠 전부터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데, 형사 사건이 생겨 경찰이나 검찰 조사를 받을 날이 오면 심적 부담이 많다. 형사 고소는 이런 압박감을 이용하는 모양이다.

자기 뜻과 상관없이 사고는 생길 수 있다. 사고가 생긴다면 어떻게 수습할지가 중요하다. 경찰 조사, 검찰 조사, 그리고 형사 재판으로 이어지면 보통 일이 아니다.

검찰청은 당사자끼리 서로 합의하도록 도와주는 제도를 운용한다. 형사조정제도다. 조정위원은 기술사 변리사 변호사 법무사 세무사 같은 전문가로 구성돼있다. 필자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으로 2007년부터 참여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연락하기 어렵고, 어렵사리 연결되더라도 본인들이 직접 풀기 어렵다. 이럴 때 중간에서 조정위원이 양쪽 의견을 존중하면서 타협점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피해자는 사건을 빨리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 합의하면 사건이 곧장 해결되거나, 후속 처리에서도 그 합의한 사정을 염두에 두고 처리한다.

작년 해넘이 무렵에 문자 쪽지를 받았습니다. 형사조정 예산이 모자라 작년에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는데, 올해에도 사정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형사조정제도를 없앨 수는 없으니, 3월부터는 조정 횟수를 줄여 운영하겠다고 알려온 것이다. 조정위원에게 줄 돈이 없어서 횟수를 줄여서 운영하겠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조정 수당이 많고, 그렇게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억 억 억 하는 예산이 여기저기에서 낭비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정작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를 몰라서 그런 걸까?

형사조정제도는 지방 검찰청마다 있다. 형사 사건에 얽혀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면 조정을 신청해 보십시오. 돈도 들지 않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사건 당사자에게 복지의 한 형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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