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신문=양인범 기자] 올해 4월 3일부터 시행된 대기관리권역 내의 대기환경특별법에 따라 모든 대기관리권역 내에서는 친환경 표지 인증을 받은 보일러를 설치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이에 환경부, 전국 지자체, 보일러 제조사와 대리점, 현장 시공업계는 법령에 따라 친환경 보일러 보급에 힘쓰고 있다.
특히 여름철이 지나고 날씨가 선선해지는 9월 말부터 보일러시공 문의가 늘어나기에 시공업계에서는 이에 대비하고 있다. 문제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보일러 설치가 모든 주택에 적용되면서, 시공이 힘들고 부작용이 있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이번 특집호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있으며 왜 일어나는지와 현장에서의 의견, 향후 어떤 식의 개선이 필요한지 등을 중점적으로 취재, 보도한다.
▲ 연도를 상향으로 한 콘덴싱보일러 배기구를 통해 물이 스며든 모습

상향식 배기연도의 한계

9월말 기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인증받은 친환경보일러 제품은 1종 콘덴싱보일러가 425개 제품, 2종 보일러가 79개 제품이다. 즉 친환경 인증을 받은 가정용보일러 중 대부분은 콘덴싱보일러다.

콘덴싱보일러는 연통 배기구를 상향으로 설치해야 하는데, 이 상향작업이 오래된 빌라․아파트 등에서는 굉장히 힘든 구조가 많다. 특히 지은지 매우 오래된 구옥(舊屋)은 바깥에 쇠로 된 철제 구조물이 있고, 실리콘으로 제대로 고정하지 않으면, 연통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현장이 많다.

게다가 이렇게 친환경 콘덴싱보일러를 설치해도 10대 중 약 2대 정도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연통이 상향으로 되어 있기에 빗물이 들어오기 쉬운 구조여서, 연통을 타고 물이 들어오면 보일러 고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있다.

특히 오래된 빌라나 아파트는 빗물이 연통을 따라 흘러가 벽을 타고 아래층으로 스며들어가서 누전을 일으키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런 주택이 한 두 곳이 아닌 상황에서 보일러를 시공한 뒤의 책임은 시공업자가 다 지게 되어 있다.

특히 4·5층 이상의 고층 주택에서 작업을 할 때는 바깥 벽으로 나간 배기구와 벽 사이에 실리콘 작업(빗물유입 방지)을 해야 하는데, 창문에 걸터 앉아 수리하기에도 위험하다. 이 때문에 사다리차나 밧줄로 몸을 묶어서 작업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시공업계 관계자들은 “보일러 한 대 설치를 위해 큰 작업 비용을 부담하는 소비자들은 거의 없다”며 “저런 작업을 거부해서 아파트단지 1곳에 잘못 보이면 시공업자들의 밥줄이 끊긴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 노후 주택의 보일러 배기구. 상향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노후주택, 배수구 있어도 문제

친환경 보일러 설치 의무화가 시행되면서 전국의 보일러 시공업계에서는 배수구가 없는 주택들이 많다는 점을 입을 모아 지적했다. 과거의 보일러는 응축수가 배출되지 않기에, 보일러실이 따로 있는 경우는 배수구가 없는 곳에 설치했다.

하지만 콘덴싱보일러는 내부 재순환을 통해 열에너지를 한번 더 쓸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대신 약한 산성의 응축수가 발생하는 단점이 생긴다. 이 응축수를 배출할 수 있는 배수구 확보가 모든 주택에 필수적이다.

현재의 친환경보일러 설치지침에서는 1회 타공을 거쳐 배수구 확보를 하라고 하지만, 노후 주택들은 1회 타공으로 배수구 확보가 힘든 집들이 많다. 특히 내벽 두께가 깊은 주택일수록 공사 자체가 힘들고, 큰 비용이 들기에 설치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2층이나 3층의 노후 주택에 콘덴싱보일러를 설치한 경우, 배수구가 있다 해도 그 배수구로 응축수가 많이 내려갈 경우 벽 내부의 배수관이 삭은 경우가 많아 아래 층의 벽으로 물이 새어나가는 경우도 생긴다.

현장의 전문가들은 응축수의 배수 호스 자체도 햇볕을 오랫동안 쬐면 갈라지거나 파손될 우려가 있기에, 응축수 문제를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구옥에는 외벽에 보일러 설치를 한 경우가 많은데, 배수시설이 5m이내에 있어도 겨울철에는 배수호스가 얼어버릴 수 있다. 동파방지 열선을 직수, 온수배관에 설치하지만, 콘덴싱보일러의 응축수 호스에는 물이 거의 없어 열선을 부착하면 열로 인한 호스의 손상 내지, 화재 위험도 있다.

현재 신축 건물들은 보일러실 배수구가 의무화돼 있어 관계 없지만, 건축한 지 20년이 넘는 건물들은 배수구가 없는 사례가 많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는 배수구를 확보할 수 없어 아파트의 우수관에 응축수 호스를 연결해 콘덴싱보일러를 설치한 경우도 있었다.

시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설치지침이 모호하기에 현장에서는 일반보일러 설치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부터, 콘덴싱을 설치한 이후의 부작용 등에 대해 큰 우려를 하고 있다”며 “현실적인 지침 개정과 유연한 법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청서류 간소화 등도 절실

친환경보일러 설치 의무화와 관련해 시공업계에서는 서류작업이 복잡해 어렵다는 점을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다.

기존의 가스보일러를 설치할 경우에는 보일러 설치확인서만 도시가스사의 고객센터(지역관리소)에 제출하면 됐다.

하지만 친환경 콘덴싱보일러는 국가에서 20만원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도시가스사 제출서류를 제외하고도 보일러 설치확인서, 증빙 사진, 소비자 개인정보동의서, 보조금 지급요청서, 견적서, 입금희망통장 사본, 세금계산서(영수증), 건물등기부등본(건축물대장) 등 총 8가지 서류를 해당 구청이나 지자체 에 제출해야 한다.

여기에 저소득층 가구에 설치할 경우에는 저소득층 증명서류가 있어야 하고, 세입자의 경우 전·월세계약서 사본이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는 이 서류작업이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는 보일러시공업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자격을 갖고 보일러 시공을 하는 사업자들은 대리점이 아닌 이상 대개 1인 사업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1인 사업자들은 시공과 서류작업까지 혼자서 처리하는 것은 정신적·시간적으로 큰 부담이라고 말한다.

물론 친환경보일러 설치 후 확인서류 작성은 국가적으로 필요한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20만원이라는 국고보조금은 결국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증명서류 제출이 필요하다는 점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다만 혼자서 모든 서류 작업을 처리해야 하는 점이 부담스럽고, 서류를 간소화하고 제출처를 한 곳으로 일원해야 한다는 것이 현장의 의견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한 구에서 시공업을 하는 사업자라면 그 사업자 입장에서는 입금희망통장 사본은 구청에 한 번만 제출하면 관리할 수 있다. 또한 소비자의 건물등기부등본은 시공업자가 일일이 구하게 하기보다는 구청의 시스템을 통해 신고하게 할 수 있다.

기존의 군·구 지역내에 정상적인 면허를 등록하고 시공을 하는 사업자들은 설치확인서와 영수증, 설치 전·후 사진만 제출하게 해도 부담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 경기도 한 아파트의 실내. 콘덴싱배출 호스를 우수관에 연결했다.

2종제품 보급도 신경써야

현재 친환경보일러 보급은 거의 대부분이 1종 콘덴싱 제품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올해 4월 3일 대기관리권역법 시행 이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을 통해 2종의 기체·액체 연료 보일러들도 친환경인증을 받은 제품이 늘어나고 있다.

2종 보일러들은 응축수를 배출하는 콘덴싱방식이 아니기에 배수구가 없는 노후주택,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들의 가구에 적합하다.

보일러시공업계는 이런 2종 보일러들도 친환경 인증 기준을 만족하는만큼 무리한 타공으로 1종 제품만을 설치하게 하지 말고, 2종 제품의 보급도 신경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시공업계는 보일러 보급만큼 중요한 A/S에서 여전히 전국적으로 난립하고 있는 불법·무자격 시공자들에 대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불법·무자격 시공자들은 인터넷 등에서 최저가로 소비자들을 현혹해 공사를 하게 하며, 이런 경우 친환경보일러가 아닌 일반보일러를 구매하게 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세입자와 집주인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세입자는 보일러가 고장나 교체를 해야 하니, 법에 따라 콘덴싱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집주인에게 문의해도 집주인들 중 연세가 많은 사람들은 비용부담으로 교체에 대해 무신경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세입자가 보일러를 자비로 교체하는 상황이 되면, 친환경보일러 제품의 보급은 그만큼 힘들어진다.

환경부는 지난 7월 16일 있었던 ‘친환경보일러 설치의무화 토론회’를 통해 전국 시공업계의 의견을 수렴했고, 친환경보일러 설치지침 등의 개정에 대해 논의 중이다.

친환경보일러 보급이 일방적인 밀어붙이기가 아닌 시공업계와 소비자, 국가 환경 개선에 모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도록 다시 한번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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