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렵 BDR Thermea 그룹의 수소연소보일러 시제품.

[가스신문=양인범 기자] 지난해 여름 우리나라는 50일이 넘는 역대 최장기간의 장마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시베리아에서는 지난해 6월 낮 기온이 38℃까지 올랐고, 미국 콜로라도주의 덴버시는 지난해 9월 40℃에 달하는 폭염에 이어 하루만에 폭설이 오는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모든 현상에 대해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류 문명의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는 약 1℃ 이상 상승했다. 대기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태평양의 섬들이 침수되고 있으며 엘니뇨·라니냐와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전세계 주요 국가들은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파리협약 등을 맺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려고 한다. 지난해 10월 28일 우리 정부도 전 세계의 흐름에 맞춰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전 세계 각국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고 하며, 이런 상황에서 연소기기업계는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본지는 이번 특집에서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세계 보일러·버너업계의 변화와 미래대응 현황 등에 대해 소개한다.

 

수소보일러의 개발

보일러는 가정용 난방부터 화학, 식품 생산, 제련, 금속 및 광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기기다.

이중 전 세계 가정용보일러 시장규모는 2019년 230억달러 이상으로 추산되며, 연간 매출은 2026년까지 1100만대를 초과하고 연매출 300억달러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세계 산업용보일러 시장은 2020년 기준 146억달러로 추산되며, 2025년까지 193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5.7%의 성장률을 가질 것으로 시장에서는 예측하고 있다. 특히 식음료 산업용 보일러에 대한 수요 증가와 화학적 최종 사용 산업에서 청정 기술에 대한 수요가 산업용보일러 시장의 주요 성장원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천연가스(주로 메탄)는 이 시장에서 가장 큰 연료 유형을 차지한다. 환경규제가 엄격해짐에 따라 석탄, 석유 등을 연료로 하는 보일러 사용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천연가스를 연료로 하는 기기에 대한 규제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세계 각국은 저탄소 난방시스템으로 히트펌프, 히트네트워크, 수소 및 직접 전기난방 등을 고려하고 있다.

이 가운데 수소 구동 보일러는 천연가스와 100% 수소가 연료로써 호환되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보일러’라고도 한다. 영국의 로버트 보쉬 GmbH의 자회사인 우스터 보쉬, 그리고 BDR Thermea그룹은 이러한 보일러 개발의 최전선에 있다. 그들은 이미 수소 100%로 가동할 수 있는 보일러를 개발하고 테스트했다. 시범 사업에서 이미 여러 곳에 수소보일러를 설치했다.

수소보일러의 작동원리는 천연가스로 작동하는 보일러 작동원리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수소는 LNG 대비 6배의 화염 확산속도와 3배의 발열량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소 후 부산물로 물만 남기기 때문에 CO2배출이 전혀 없다.

수소보일러는 천연가스보일러와 동일한 방식으로 설치 및 작동하고 설치를 위해 추가 변경이 필요하지 않다.

천연가스와 마찬가지로 수소도 파이프라인을 통해 분배될 수 있다. 그러나 천연가스와는 달리 수소는 밀도가 낮으며 고압 하에서 압축 및 보관해야 한다. 수소는 또한 일부 금속에 반응할 수 있으며 특정 파이프를 손상시킬 수도 있다.

천연가스와 마찬가지로 수소는 정상 상태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천연가스에 부취제를 섞어 누출 시 감지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것처럼, 향후에는 수소에도 부취제를 추가할 수 있다.

또한 천연가스는 확실한 푸른 불꽃으로 연소되는 반면 수소는 어둠 속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옅은 푸른 불꽃을 보인다. 그러나 수소보일러 기술은 이러한 문제, 특히 화염 감지를 해결할 것이다.

영국, 2025년부터 가스보일러 금지법안 고려

영국 정부는 2025년에 새로운 미래 주택 표준 법안을 도입할 계획을 가졌다. 2025년 이후에 건설하는 모든 신축 주택은 가스보일러 설치가 금지되고, 저탄소 난방히트시스템인 히트펌프, 수소난방기기 등을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이 법안은 현재 잠정적으로 취소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영국 잉글랜드 동북부 게이츠헤드 근처에 있는 북부 가스네트워크의 Low Thornley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탄소배출이 전혀 없는 미래를 처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 모듈식 주택은 올해 4월 말까지 보일러, 가스레인지, 벽난로 등 모든 가정기기가 수소를 이용한 제품들로 채워진다. Hy4Heat 프로젝트에서 BEIS(영국 비즈니스에너지산업전략부)와 협력하는 파트너는 수소보일러와 함께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조리기기 및 요리스토브의 프로토 타입을 설치할 것이다.

영국의 보일러 제조사인 우스터 보쉬와 박시는 함께 가정용 난방 탈탄소화에 수소가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우스터 보쉬(Worcester Bosch)의 CEO인 칼 안젠은 개발에 대해 언급하며 “수소하우스 프로젝트는 가스 네트워크와 궁극적으로 우리 가정에 수소를 안전하게 구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면서 “현재 진행중인 시험은 탄소제로 미래를 향한 중요한 단계이며 우리의 수소보일러 프로토타입이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박시 히팅 UK 및 Ireland의 전무이사인 카렌 보스웰은 “우리는 또 다른 획기적인 수소 가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저탄소 개발 최전선에 서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소하우스 프로젝트’는 영국 국무총리의 10대 계획에 자세히 설명된 계획과 일치한다. 영국은 2023년에는 수소 이웃, 2025년에는 수소마을, 2020년대 말엽 이전에 수소타운(소도시)을 건설할 예정이다.

영국은 이외에도 지난해 초 Keele 대학에서 식당에 사용하는 천연가스의 20%를 수소로 혼합해 실험을 했고, 이 때 기존 조리와 거의 동일함을 확인했다.

이 프로젝트는 ‘HyDeploy’로 알려졌고, 기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에 수소를 20%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CO2 배출량을 연간 600만톤까지 줄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실험을 통해 기존 천연가스에 20%의 수소를 혼합해 쓰면 보일러 또는 가정내 연소기기의 교체를 할 필요가 없다고 연구자들은 예상한다. 영국은 2025년까지 20:80의 수소 혼합을 천연가스에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현대 보일러가 적어도 20% 이상의 수소 블렌드로 천연가스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2021년 1분기 말 영국 리버풀 근처 윈라톤이라는 작은 마을의 약 650가구가 10개월 동안 20:80 비율로 수소를 부분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영국 법안은 언제든지 국가 가스믹스 기준에서 0.1% 이상의 수소비율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HyDeploy는 가스믹스의 20%가 현재 유럽에서 테스트 중인 가장 높은 비율이라고 주장한다.

 

수소촉매보일러와 연료전지 보일러도 개발

이탈리아의 지아코미니(Giacomini)는 연소식 수소보일러 기술을 개선한 후 2010년에 통합시스템 보일러기술에 도입한 최초의 회사다. 이들의 H2ydroGEM 수소보일러는 순수 수소를 연료로 하는 콘덴싱보일러다.

이 보일러는 태양전지패널을 통해 전력을 생산한 후 이 전기로 내부에 장착된 전해조를 통해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물을 전기분해한 뒤 산소는 대기중으로 방출하고 보일러와 함께 제공되는 탱크에 수소를 저장한 뒤 보일러는 무연연소를 제공하는 내부의 특수촉매와 수소에 의해 구동된다.

이 때 3% 이하의 저농도 수소가 반응관 내부에서 촉매제를 통해 공기와 산화 반응을 일으킨다. 이 반응으로 열을 발생시켜, 물과 실내 온도를 높이게 된다. 반응관 내부의 수소 농도는 4%(약 3%)이하로 유지되며, 250~300℃ 범위의 온도를 유지한다. 이 모든 과정은 다른 전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촉매반응에는 탄소가 포함되지 않고, 온도가 300℃를 초과하지 않아 CO2배출이 없다. 난방에 쓰이는 열원은 최대 80℃이며, 난방수를 35~40℃로 데울 수 있다.

이 때 유해한 질소산화물(NOx)의 발생도 최소화한다. 이 반응으로 인한 폐기물은 부분적으로 응축된 수증기이고, 나머지는 아무 반응없이 대기 중에 방출된다.

지아코미니 수소보일러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주택에 설치하는 태양광 발전과의 연계라고 할 수 있다. 태양광 패널을 통해 자체 생산한 전기를 통한 수전해로 수소를 생산하고 이 수소를 실내의 연료전지와 보일러의 연료로 사용하며, 연료전지에서 생성된 물은 다시 재활용하는 순환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통합보일러 기술 외에도 CHP(복합열 및 전력)보일러 기술은 연료전지를 사용하며 천연가스를 주입한다. 수소연료전지는 열과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전기 화학반응을 수행한다. 현재 영국에서 기술을 제공하는 회사는 두 회사뿐이다. 하나는 이탈리아 회사 솔리드 파워 스파 그룹의 자회사인 블루젠과 다른 하나는 일본의 파나소닉과 협력하여 기술을 개발한 독일의 비에스만이다.

현재 전 세계에는 약 1억5천만개의 가정용보일러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수소보일러 기술이 등장하면 엄청난 대체 수요가 있다. 주요 보일러 회사는 가능한 한 빨리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입법과 인프라의 부족은 수소 구동 보일러를 사용하는데 주요 장애물이지만, 수익성을 높이고 비용 효율을 위해서는 이런 보일러를 대량으로 생산해야 한다.

▲ 수국이 2011년 중국에서 개발한 수소버너 현장.

도요타, 수소버너 개발해 쓰고 있어

수소보일러와 함께 산업용버너에서도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일본의 대표 기업인 도요타(Toyota)는 지난 2018년 11월 세계 최초의 산업용 범용 수소 버너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도요타는 일본의 열기기 제조사인 주가이로(Chugai Ro)와 공동으로 세계 최초의 산업용 범용 수소 버너를 만들었다. 도요타는 이 버너를 제조 공장의 단조 작업에 사용하고 있다.

기존의 수소버너 개발이 어려웠던 점은 수소가 산소와 빠르게 반응해 화염 온도가 높아지고 위험한 NOx가 배출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수소 버너의 실제 사용은 어렵다는 평가가 컸다. 도요타가 개발한 수소버너는 수소를 더 천천히 연소시킬 수 있는 두 가지 새로운 구조를 통합한다. 이 버너는 또한 CO2 배출이 전혀없고 NOx 배출을 크게 줄이는데 성공했다.

점화될 때 수소와 산소가 완전히 혼합된 상태면 혼합물은 높은 화염 온도로 격렬하게 연소한다. 도요타의 버너는 수소와 산소가 나란히 흐르고 완전히 혼합되지 않고 발화되어 연소 속도가 느려지고 화염 온도가 낮아진다.

연료 혼합물의 점화 시점에 고농도의 산소가 포함되어 있으면 화염 온도가 높아 연소가 격렬해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버너에 수소를 공급하는 파이프에 작은 구멍이 열려 소량의 수소와 산소를 사전 연소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산소 농도는 메인 연소를 위한 최적인 19% 수준으로 감소되어 화염 온도를 낮춘다.

도요타는 이 새로운 기술을 통해 1000 개의 대규모 천연가스 버너를 일본 전역의 당사 공장에서 수소버너로 대체할 수 있다. 기존 기술은 상당한 양의 CO2 배출을 발생하기 때문이다. 플랜트 CO2 배출제로를 실현하기 위해 도요타는 다른 공장에 수소 버너를 점진적으로 설치할 계획이며 그룹의 다른 회사들도 설치를 고려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소버너 개발은 이미 진행된 바 있다. 지난 2011년 국내 산업용버너 제조사인 ㈜수국은 중국에서 수소버너를 개발·설치해 운영한 바 있다.

이 당시만 해도 중국 내 대규모 화학공단에서 발생하는 부생수소는 안전관리 명목으로 대기 중으로 방출시키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당시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수국과 중국 기업이 부생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천연가스를 원료로 할 때와 기본 원리가 거의 동일했기에, 가스버너 전문기업인 수국이 수월하게 개발한 것이었다.

수소버너까지 만들어진 현 상황이지만, 국내 연소기기 업계에선 상황 대처에 미온적인 면이 있다. 국내 시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산업용보일러·버너 업계는 수소기술에 대해 당장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또한 이런 급격한 세계 연소기기 업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수소보일러와 버너의 개발·보급이 마냥 빨리 일어나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한다.

앞에서 설명한 모든 신기술들은 결국 수소의 충분한 공급에서부터 실용성을 가지는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소생산이 천연가스를 대체하기엔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국내 사정에선 더 쉽지 않다는 의견이 크다.

국내의 한 연소기기 전문가는 “수소경제가 활성화되는 첫 번째 길은 결국 수소의 대량 생산·저장에 달려있는데, 아직 국내에서는 어려운 상황이며 보일러·버너에 쓰기에도 부족한 상황이 크다”며 “다만, 지금부터 빨리 준비한다면 향후 해외 연소기기 제조사들과의 경쟁에서 크게 밀리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가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