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인
- 승인 2007.05.07 00:00
- 호수 828
▲ 1907~1950년
1907년 일한와사(주) 설립 가스산업 태동
1940년대 2만8천여가구에서 가스 사용
우리나라의 가스산업은 미국인들에 의해 설립된 한미주식회사에 의해 전기 사업이 시작된지 10년 뒤인 19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 통감부의 설립 인가를 받아 설립된 일한와사주식회사는 1년가량 자본금 불입과 서울 용산에 1만4천평 부지를 확보했다.
일한와사(주)는 출범 즉시 가스제조기기의 도입과 제조시설공사에 착수하는 한편 1909년 6월 일한와사전기(주)로 개칭하고 용산에 있는 가스제조공장을 완공, 11월 3일 진고개 등 일본인 상가와 거주지역에 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스를 사용한 역사적인 첫날인 셈이다. 이후 부산지역에서도 한국와사전기(주)가 1912년 8월부터 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1937년 평양에서도 서선합동전기(주)가 설립돼 가스사업을 시작했다.
194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는 총 5개 업체에서 연간 2790만㎥의 가스가 생산됐으며 이용자는 2만7000여명에 이르렀는데 일본인이 2만5799명으로 대부분이었으며 한국인은 1855명으로 6%에 불과했다.
가스판매량도 1940년의 경우 사용가구 2만8천여호에 1786만6390㎥이었다.
▲ 1950~198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PX에서 LPG 불법 유통
1970년대 가스법 제정, 가스안전공사 출범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군들이 액화석유가스를 사용했고 미군 PX에서 불법 유출된 LPG를 극소수 한국인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1년 일본산이 수입되기도 했으나 당시 LPG는 부유층의 부엌 사치품으로 간주됐다고 한다.
1960년대 들어 고압가스수요가 점차 늘면서 가스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하자 안전관리 문제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에 1962년 고압가스 제조·저장·운반·소비과정 전반을 규제하는 고압가스 등 단속법이 제정됐다.
1964년 대한석유공사 설립과 함께 석유류 제품이 생산되면서 부산물로 LPG 생산이 본격화됐고 1972년에 들어서야 가정연료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는 LPG가 특정 소비층에서 일반층 소비체제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1965년 1944톤이던 LPG소비량은 1972년 5만5439톤으로 7년만에 무려 28.5배가 증가했다. 소비량에 비례해 가스사고도 증가해 1964~1971년까지 109건에 207명이 사망했다.
가스사용이 본격화되면서 제도적 장치의 부족과 안전의식 결의로 대형 가스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현재 우리나라 최초로 기록된 가스사고는 1964년 8월 서울 마포아파트 가스폭발사고이며 이후 1971년 서울 대연각 호텔 LPG폭발화재사고는 163명이 사망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이어 1972년 서울 대왕코너의 가스화재사고 등 대형가스폭발사고가 끊이지 않자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1973년 고압가스안전관리법이 제정됐다.
고압가스안전관리법이 제정되자 이를 수행할 기관이 필요했고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전신인 고압가스보안협회가 1974년 출범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계기로 정부는 에너지수급난의 장기적 해결책으로 탈석유 에너지공급원의 안정적 확보를 추진하게 된다. 1978년 LNG도입에 대한 타당성 조사에 본격 착수, 1980년 10월 정부가 LNG도입 기본방침을 입안한데 이어 1981년 4월 경제장관협의회에서 의결된다.
▲ 1980~2000년
석유파동 계기로 천연가스시대 막 열어
1990년 전국 LNG주배관 건설사업 추진
1983년 8월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와 LNG 장기도입 계약이 체결됐으며 1983년 4월 경기도 평택에 처음으로 연간 200만톤 규모의 LNG생산기지가 착공된다. 당시 평택기지는 주배관망 98km 규모로 4년여의 공사기간을 거쳐 1987년 2월부터 수도권에 LNG공급을 시작해 천연가스 시대를 열었다.
수도권 지역의 도시가스용 천연가스는 1987년 2월 (주)삼천리를 시작으로 1987년 2월 강남도시가스, 인천도시가스, 4월 극동도시가스(현 예스코), 5월 한진건설(현 한진도시가스) 순으로 공급됐다.
수도권에 이어 전국 천연가스 공급 기본계획이 1990년 4월 경제장관회의에서 의결됨에 따라 전국배관망 건설사업이 본격 추진돼 1996년까지 중부권, 신도시, 영남권, 호남권, 남부권, 서해권 주배관 공사가 진행됐다.
1994년 12월 서울 마포구 아현동 가스공사 정압기지 폭발사고를 계기로 인위재난관리법을 제정하고 가스, 전기, 수도 등 내진설계기준 감리 강화, 재해예방을 위한 전문 연구를 담당할 국립방재연구소 설립이 검토됐다.
이듬해인 1995년 4월 대구지하철공사장 도시가스폭발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가스3법을 전면 개정하는 한편 가스안전공사의 조직과 인력을 2배로 늘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 2000~2007년
2004년 국내 대륙붕 가스전 상업생산 개시
월드컵 앞두고 대기환경개선 CNG버스 등장
2000년 들어서는 환경오염의 주범인 경유버스를 대체할 대안으로 CNG버스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대기환경개선을 목적으로 CNG버스가 등장했지만 LPG보다 고압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사업초기 보급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2001년 6월 상업용 CNG충전소로는 은평CNG충전소가 처음 들어섰으며 대구, 부산 등으로 CNG충전소 건설이 봇물을 이루기 시작했다. 당시 CNG충전소 준공 행사장에서는 환경부 장관이 매번 참석할 정도로 정부의 관심이 높았다.
이와함께 2000년대는 우리나라가 산유국의 대열에 우뚝 서는 시기였다.
1998년 국내대륙붕 6-1광구에서 탐사시추에 성공, 2004년부터 석유공사가 LNG 40만톤, 원유는 42만 배럴을 1년간 생산, 천연가스와 원유는 울산 및 경남지역의 일반가정과 발전소 등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천연가스는 하루 34만가구, 원유는 하루에 자동차를 2만대 운행할 수 있는 양이다.
동해-1 가스전은 천연가스 총 매장량 2500억ft3(LNG 환산 500만톤), 원유 200만배럴이 매장되어 있으며, 매년 약 40만톤씩 향후 15년 동안 울산, 경남 지역에 공급될 예정이다. 이로 인한 수입대체효과는 1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