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공도를 달리던 현대차 ‘블루온’이 목격되어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블루온’은 2009년 프랑크프루트 모터쇼에서 i10 전기차라는 이름으로 최초 공개됐고, 이후 ‘블루온’이란 이름의 양산모델이 2010년 9월 청와대에서 공개되었다.

SK이노베이션에서 제작한 배터리가 탑재되어 1회 충전거리 140km, 최고 출력 81마력의 성능을 보였지만, 아쉽게도 정부와 공공기관용으로 1년 간 213대만 생산된 후 단종되었다. 현대, SK 두 그룹의 야심작이었지만, 당시 충전소 등 전기차 관련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고, 생산단가도 높아서 시장진출에는 실패했다.

올해 5월에 발간된 「Hydrogen Insight 2023」에 따르면 2023년 1월 기준 전 세계 수소 프로젝트는 1,046개로 2030년까지의 3,200억 달러의 투자가 예정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진행단계를 살펴보면 발표 단계 47.8%, 기획 단계 32.2%, 기본설계 단계 11.6%, 투자 실행 단계 9.1%로 실제 투자 자금이 집행된 것은 10%도 채 안 되었다.

게다가 2022년 말까지 6GW의 수전해 시설이 설치될 것으로 계획이었지만, 실제로 설치된 것은 700MW에 불과했다. 공급망 문제, 인플레이션, 금리 상승 등으로 인해 수소 시장에 투자 계획만 난무하고 실제 투자는 미흡한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는 2020년 2월 세계 최초로 수소법을 제정하고, 2021년 11월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2030년까지 100만 톤, 2050년까지 500만 톤의 청정수소 생산 목표치를 제시하였다. 2022년 11월 수소경제위원회에서 ‘수소경제 3대 성장 전략’을 발표하고, 2023년 8월에는 수소발전 입찰시장을 개설하는 등 외형적 발전 모습을 갖춰 나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 느끼는 것은 다소 괴리가 있다. 지난 달 발간된 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수소생산 구축사업 대상 10개 지역 중 5곳의 예산 집행률이 70%를 하회하고, 모든 사업장이 인허가 문제 등으로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이상 지연되었다. 심지어 춘천은 주관기관이 사업을 포기하기도 했다.

청정수소 인증제도도 선진국 수준으로 기준이 수립되어 재생에너지 여건이 열악한 우리로서는 부담이 되고, 청정수소 인센티브도 등급별 비례배분 원칙만 제시되었을 뿐 정확한 지원액을 사전에 알 수 없어 기업이 투자 타당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소 발전량도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에서는 2030년 목표량이 49TWh였으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9TWh로 수정되어 1년 남짓한 기간에 목표치가 40% 이상 감소했다. 거기에 수소 운송과 저장 방식, 인허가 문제 등 수소 사업을 둘러싼 리스크는 첩첩산중이다.

현대차 ‘블루온’에 대한 기시감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세계 최초로 수소차도 양산하고, 기업들의 수소 투자계획도 여기저기 발표되었지만 발전시장 일부를 제외하고는 수소경제가 아직 멀게 느껴진다. 석유화학, 철강 산업 등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수소가 절실하지만 수소의 공급처와 수요처 모두 겹겹이 쌓인 규제와 리스크 속에서 눈치 게임을 하는 양상이다. 정부의 정책 하나 하나가 기업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시점이다.

결국 정부만이 지금의 눈치 게임을 끝낼 수 있다. 정부가 몸을 사릴수록 기업 투자는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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