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인 SK박미주유소.
국내 1호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인 SK박미주유소.

[가스신문 = 최인영 기자] 서울 도심의 한 주유소에 작은 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배관으로 공급한 천연가스는 소비자를 위해 전기에너지로 바뀌고 있다. 태양광, 수소연료전지 등 친환경 발전설비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이곳에서 소음, 연기, 송전탑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5톤에서 25톤에 이르는 대형화물차가 드나드는 화물차휴게소. 이곳에도 수소연료전지를 비롯한 친환경 발전설비가 들어서고 있다. 물류 이동이 많은 인천과 울산에서 머지 않아 대형수소전기트럭과 제조식(On Site) 수소충전소를 함께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 석유사업자가 뛰어들면서 관련 업계가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석유사업 자회사인 SK에너지는 전국 주유 공급망을 기반으로 수소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법규로 인한 제약도 있지만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전에 없던 에너지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SK에너지가 넷 제로 달성을 목표로 올해 친환경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유소에서 수소발전, 에너지슈퍼스테이션

지난 2월 국내 1호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이 개소했다. 서울시 금천구 SK박미주유소에는 연료전지(300㎾), 태양광(20㎾) 설비와 함께 전기차충전기(350㎾·100㎾)가 설치돼 있다. 배관으로 공급된 천연가스에서 추출한 수소로 연료전지를 가동해 전기를 얻을 수 있다.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은 산업통상자원부의 분산에너지 활성화 정책에 따라 실증특례를 얻어 지어지고 있다. 기존 주유소, LPG충전소에 태양광, 연료전지 등 분산에너지와 전기차충전기를 설치하는 주유소 기반 혁신사업 모델이다. 전기를 직접 생산하면서 충전하는 미래차 인프라인 셈이다.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 확대로 인해 비롯되는 발전소, 계통 투자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차량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 설치할 수 있고, 충전소 부지확보와 주민수용성 부담도 완화할 수 있다.

SK에너지는 향후 수소전기차 충전까지 고려하고 있다. 도심 내 종합에너지스테이션으로 거듭나기 위해 서울 시내 주유소를 시작으로 수도권, 전국으로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을 확산해 나갈 예정이다. 분산발전을 통해 송배전 손실은 낮추면서 전력 자급률은 높이는 셈이다.

현행 법상 주유소에는 연료전지설비를 설치할 수 없다. 위험물안전관리법 등에는 주유소 부지 내 설치 가능한 시설물은 태양광, 전기·수소 충전시설 등이라 규정하고 있다. 연료전지와 ESS(에너지저장장치)는 안전상의 이유로 설치를 제약하고 있다.

연료전지가 위험물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법규해석에 따라 시각을 달리하고 있다. 법규에는 연료전지를 위험물로 규정하는 문구가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은 지난해 5월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통해 지어진 충전 인프라다. 서울시와 SK에너지가 주유소 내 연료전지발전시설 설치를 위해 규제개선을 지속 건의한 결과다. 올해 1월부터 주유소에 연료전지, 태양광, 전기차충전기를 설치해 향후 2년간 실증사업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서울시는 주유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차량 충전에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전기사업법 개정도 준비하고 있다.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기차 충전에 전력을 바로 사용할 경우 요금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슈퍼스테이션에서 생산한 전기의 경우 일부는 자체 소비하고, 나머지는 한전 송전망에 보내지고 있다. 전기차 충전에 전력을 공급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현행 전기사업법 때문이다.

전기사업법에는 두 종류 이상의 전기사업 겸업을 금지하고 있다. 발전사업자인 SK에너지는 이로 인해 전기판매업을 겸할 수 없는 것이다.

연내 10곳의 주유소에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을 조성하는 것이 SK에너지의 사업목표다. 주유소 유휴공간에 소규모 연료전지를 설치한 후 생산된 전기를 한전에 판매하거나 전기차 충전에 직접 사용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안전성 확보 등 선결과제로 인해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은 확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열린 제2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에서 규제특례위는 사전 전문위원회를 거쳐 예상 문제를 심층 검토한 바 있다. 당시 소방청이 제시한 사전 위험성 평가와 SK에너지가 준비한 안전조치 이행 등을 전제로 산업부는 실증특례를 승인했다.

업계 관계자는 “연료전지와 가스배관을 소방청이 위험물로 보고 있다”며 “정부 정책에 기반한 에너지슈퍼스테이션 보급을 위해 전기사업법과 위험물관리법 등 관련 법 개정과 더불어 제도 개선 등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에너지슈퍼스테이션에는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동되고 있다. 연료전지와 태양광 발전설비에 이상을 감지하면 시설 가동을 전격 중단하고 있다. 해당 정보는 곧바로 담당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국내 제2호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은 현재 설계를 마친 상태로 서울 양천구 개나리주유소에 이달 초 착공을 앞두고 있다.

SK에너지는 1·2호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은 100% 지분 투자한 반면 3호부터는 SPC 구성을 고려하고 있다.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의 성공적인 실증은 관련법 개정의 지표가 될 수 있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SK박미주유소에 설치된 수소연료전지 발전설비(왼쪽)와 주유소 뒤편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SK박미주유소에 설치된 수소연료전지 발전설비(왼쪽)와 주유소 뒤편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화물운전자 위한 쉼터, 내트럭하우스

고속도로 휴게소 21곳에는 화물차를 위한 공간이 있다. 물류중개, 주유, 차량관리 등 차량 관련 서비스뿐 아니라 운전자를 위한 휴식, 주차, 식음료 등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주유에서 휴식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이곳은 내트럭하우스(NeTruck House)다. 지난 2006년 광양항에서 처음 선보인 내트럭하우스에는 △주차장 △휴게동 △정비·세차동 △주유소 등이 있다.

이곳에 친환경 설비가 들어설 예정이다. 태양광 발전, 수소 생산, 전기차 충전 등 신재생에너지를 총망라하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전국망을 보유한 SK에너지가 친환경 복합 에너지스테이션 보급에 나선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사업부지를 무상 또는 저가에 임대하고, SK에너지가 건축 등 시설 투자와 운영을 맡고 있다.

앞서 서울시와는 지난해 1월 신재생에너지 및 친환경 차량 보급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한 바 있다.

현재 인천과 울산의 내트럭하우스에는 수소 생산·충전을 위한 설비가 들어서고 있다. 향후 수소트럭 보급이 늘면 운영 경제성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SK에너지의 기존 주유소 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규모 부지확보로 인한 시간지연을 막을 수 있다. 국내 유일 최대 화물차 휴게시설이자 친환경 상용차 복지시설인 셈이다.

SK에너지는 오는 2030년까지 전국 40개소의 내트럭하우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사회적 공헌뿐 아니라 탄소중립에도 기여하기 위해서다. 전국 지자체, 항만공사, 도로공사 등과 협력하면서 SK에너지는 부산, 울산, 여수, 광양, 제주, 대전, 옥천, 광주, 인천 등에 내트럭하우스를 설치하고 있다.

부산 신항, 옥천, 평택 등 3개 사업소에 SK에너지는 태양광발전시설(총 1592㎾)을 운영하고 있다. SK에너지의 주유소 캐노피와 옥상 등에 설치한 태양광 설비는 전국 사업소로 확장할 계획이다.

SK에너지 관계자는 “국가 육상 물류를 전담하는 화물차 운전자는 시간에 맞춰 화물을 운송하는 압박에 시달리면서 열악한 근로환경과 사고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며 “차량 연료비와 고속도로 통행료 등을 줄이기 위해 통행료를 면제받는 밤 시간에 화물을 운송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졸음운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내트럭하우스에서 화물차 운전자는 수면, 샤워, 식사, 세탁, 저렴한 주차, 종합정비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넓은 주차공간과 여유로운 진입로도 보장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화물정보 중개도 받을 수 있다. 주선사를 위한 사무공간에서 화물차 운전자에게 새로운 일감과 소통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전국 내트럭하우스의 이용자 수는 연간 약 8000명, 1개소당 하루 평균 300~400대의 차량이 드나들고 있다. 지난 2018년 8월에는 베트남 사이공 뉴포트(Saigon NewPort)사와 화물차휴게소 사업 공동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해외시장 진출을 알린 바 있다.

내트럭하우스는 네트워크(Network)와 트럭(Truck)을 합친 말로 소중한 화물차 네트워크이자 소중한 나의 트럭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수소 상용차 보급확산과 친환경차 시대의 마중물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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