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관계자가 제주도에 설치된 스마트계량기를 직접 살펴보고, 관련업계로부터 시스템 보완점에 대해 경청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가 제주도에 설치된 스마트계량기를 직접 살펴보고, 관련업계로부터 시스템 보완점에 대해 경청하고 있다.

[가스신문 = 주병국 기자]  계량 선진화 사업의 일환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가스AMI 보급사업이 실증 및 1차 시범 보급사업을 끝내고 올해부터 2차에 돌입한다.

40년이 넘은 도시가스산업에 가스AMI (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가 공식적으로 거론된 것은 2016년이며, 그 후 7년 만에 시범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는 등 ‘전국 보급’이라는 가시권에 들었다. 하지만 도시가스업계와 제조사 그리고 전문가들은 정부의 가스AMI 보급사업에 몇 가지 우려 사항을 지적한다.

이유는 정부의 정책변화로 언제든지 관련 사업이 멈출 수 있다는 정책 불신과 소비자 수용성과 안전성 확보 그리고 보급사업의 당사자인 도시가스업계가 간곡히 요구하는 제도개선이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가 ‘가스AMI 호’의 닻을 올려 출항시 언제든지 좌초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가스AMI 1차 시범 보급사업에 이어 올 4월 2차 보급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계획대로 추진되면 올 연말쯤 전국 10개 지자체 권역내 약 14만대의 스마트계량기가 보급될 전망이다. 이후 전국적으로 보급확대가 이뤄질 경우 한해 최소 390여만대의 막식계량기 교체분이 스마트계량기로 전환될 것이며, 이에 따른 재원만 수천억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번 기획을 통해 정부가 전국 보급을 앞두고 반드시 짚어야 할 선행과제들을 살펴본다.

7년 전 정부 규제 완화와 신산업 육성 명목으로 가스AMI 제시

정부의 가스AMI 관련 정책발표는 2016년 당시 산업부 우태희 전 차관이 ‘도시가스 시스템 경쟁력 강화 5개년 계획’을 수립, 발표하면서 지능형계량인프라(AMI) 구축이라는 이름으로 정책과제로 제시됐다. 당시 도시가스업계는 계량 선진화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었다. 이유는 계량의 정확도를 높이고, 원격검침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저렴하면서도 대중적인 막식계량기 대신 고가의 스마트계량기(80,000~90,000원대)로 교체하자는 정부의 의도에 ‘득보다 실’이 많고, 특히 소비자와 지자체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업계의 입장에 당시 정부는 규제 완화와 신산업 육성이라는 이유로 도시가스 지능형계량인프라 확충과 빅데이터 산업 활용을 강조했고, 후속 조치로 강원도시가스, 경동도시가스, 부산도시가스, 삼천리, 예스코가 참여하여 강원, 울산, 서울, 경기 지역에 약 3천대의 스마트계량기를 시범적으로 보급했다. 이와 함께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중심으로 고성능 계량기의 표준화와 통신, 안전, 데이터 관리 등에 대한 표준화도 진행됐다. 하지만 그 이후 가스AMI는 전기시장의 스마트 그리드사업 비정상화와 정부 정책변화, 민간사 참여부족, 제조사 제품개발 문제와 통신상 문제 등으로 좌초될 위기를 몇 번 겪었다.

현 스마트계량기,과도한 통신비 문제제기

이후 여성 검침원의 성범죄 문제와 30년 이상 이어온 방문 검침에 따른 사생활 침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다시 가스AMI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2019년 11월 정부는 2020년까지 총 3만 대의 스마트 가스계량기를 제주도 등 4개 광역자치단체에 보급한다고 밝혔다. 이후 제조사와 도시가스사 참여 확대로 당초 계획보다 많은 3만6500대의 스마트계량기가 설치되는 등 가스AMI 1차 시범 보급사업이 지난해 말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통신의 안전성과 제품의 신뢰성이 어느 정도 검증됐고, 특히 난검침 지역의 원격검침 구현으로 여성 점검원의 근로환경이 개선됐다. 더불어 소비자 역시 대면 검침을 피할 수 있어 사생활 보호도 종전보다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기에다 가스누출 감지 기능이 계량선진화 시스템에 담기면서 가스누출을 잡아내는 사례도 늘어 안전 측면에서 소기의 성과도 올렸다는 평가다.

하지만 시범사업에 보급된 스마트계량기는 가스누출에 따른 초동조치의 핵심인 차단 기능이 없어 세대 내 소비자 부재시 신속한 안전조치가 어렵다는 문제점도 드러냈고, 특히 통신사의 유료 통신망을 이용하다 보니 소비자가 월 260~300원의 추가 통신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등 보급확대에 최대 걸림돌로 지적돼 부가 보급 확대에 앞서 보완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의 방식으로 스마트계량기가 1900만 세대에 보급될 경우 소비자가 추가 부담해야 할 통신비용만 연간 570억원에 이른다. 이는 과도한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올해 정부예산 40억 투입, 스마트계량기 10만대 보급

현재 정부는 실증 및 1차 보급사업을 통해 계량기 표준화를 어느 정도 구현했고, 통신망의 안정화와 플랫폼을 구축해 지난 4월 가스AMI 2차 보급사업을 확정, 발표했다.

설치 규모는 1차 때 보다 2.7배 많은 10만대에 이르며, 참여 지자체도 6곳에서 10곳으로 늘었다. 지역별 보급계획을 보면 경기도가 가장 많은 2만5000대, 이어 전남도 1만1000대, 대전시 8500대, 광주시와 대구시는 각각 8000대, 충남도 6000대, 서울시 5000대, 제주도 2500대를 연내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문제는 가스AMI의 전국 보급 확대에 앞서 추진하는 2차 사업에는 본 사업의 성공 여부를 가름할 만큼 중요한 △계량기 안전장치 확보 △고가의 계량기에 대한 소비자 수용성 △계량 선진화에 걸맞는 규제 완화와 같은 제도개선이 검토되지 않은 채 진행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과거 계량 선진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가스AMI는 무선검침, 정밀계량, 가스누출 실시간 감지 등을 구현해 안전성 확보와 함께 소비자 편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스마트계량기의 전국 보급시 소비자의 사생활 보호, 사용자 편리성 증대, 계량 정확성 확보로 가스요금 신뢰성, 여성 검침원의 근로환경까지 개선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근로환경 개선에는 과거 여성검침원을 대상으로 발생한 성추행 문제도 근본적으로 예방하겠다는 목적도 가스AMI사업에 깔려있었다.

하지만 도시가스업계가 바라보는 바람직한 가스AMI사업의 시각은 정부와 확연히 차이점을 드러낸다. 업계는 2차 시범 보급사업부터 반드시 소비자의 수용성을 고려한 비용 절감 차원의 대책 마련과 안전성 강화 그리고 시스템 현대화에 따른 규제 완화도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올해 10개 지자체에 보급될 스마트계량기는 ICT 기술을 활용하여 무선검침, 정밀계량, 가스누출 실시간 감지 등 서비스가 가능한 지능형계량 및 검침 인프라를 기반으로 계량기에 배터리 탑재가 필수이다. 이렇다 보니 배터리 용량 문제로 현재 실시간 검침이 불가능하다. 즉 1일 3회 누적된 데이터를 전달할 뿐, 정부가 제시한 실시간 검침과 가스누출 감지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실시간이 가능하려면 배터리 용량을 늘려야 하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제품 단가 인상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가스누출시 자동차단 기능이 없어 소비자의 안전을 100%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세대 내 자체 초동조치는 불가능한 셈이다.

수년간 정부가 계량 선진화를 추진시 기대한 소비자 편익 증대와 빅데이터 활용은 2차 시범사업부터 보완하지 않을 경우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값비싼 스마트계량기를 설치하고도 소비자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채 비용부담만 소비자에게 가중되어 사회적 편익이 저하될 경우 관련 사업의 추진 목적도 상실되는 우려의 결과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2차 부터 원격 다기능안전계량기로 전환 등 보완책 강구해야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2차 시범사업부터는 반드시 스마트계량기에 차단(압력기능(여러 방식 중 하나)이 탑재된 계량 선진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지금의 스마트계량기를 원격검침이 가능한 다기능안전계량기로 교체된 시범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계량 선진화에 따른 비용을 낮춰 소비자의 수용성을 높이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보급사업을 통해 설치되는 스마트계량기는 종전의 막식계량기(1만9000~2만원 초반대)보다 4배 이상 비싼 80,000원대로, 고가의 계량기(스마트계량기: 81,250원에 설치비 1만원 별도)이다. 이런 전환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다. 계량 선진화에 따른 기대효과가 아무리 많아도 당장 도시가스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경제적 비용은 적지 않다.

또 지자체는 도시가스 가격 인상을 우려하여 계량 선진화 비용을 요금기저에 반영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런 현실적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가스사를 중심으로 한 무료 통신망 활용방안이 지금부터라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또 소비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기기개발과 공급단가 인하에 제조사, 도시가스사, 정부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 특히 통신사의 배만 불리는 지금의 통신사 중심의 통신방식(LTE(NB-loT, LoRa)만 고집할 게 아니라, 비용부담을 최소화하는 무료통신망 활용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코자 현재 몇몇 도시가스사들은 자체 통신망을 활용한 원격검침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또 전기와 가스를 동시에 검침할 수 있는 스마트 그리드와 접목을 시도해 통신상의 안전성을 확보하면서도 통신비용을 줄여 소비자의 비용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이런 움직임에 정부가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2차 시범 보급사업부터 안전성 확보와 소비자의 수용성을 고려한 현실적 추진 방안을 도시가스업계와 함께 모색해 성공적 가스AMI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계량 선진화에 걸맞는 제도개선도 추진시급

여기에다 올 연말 안으로 가스AMI 보급실적이 14만대에 이르는 만큼 정부는 계량 선진화에 걸맞는 규제 완화와 같은 합당한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관련업계에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 7년 동안 가스AMI를 추진해 오면서 관련 분야의 규제 완화와 같은 제도개선을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올해 보급 확대를 위한 2차 시범사업이 추진되고, 앞으로 전국 보급이 가시권에 든만큼 이제는 소비자의 편익과 도시가스사의 관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규제 완화와 합리적 제도개선이 논의되어야 하며, 특히 업계에서 수차례 제시한 표준 안전관리규정상에 명시된 안전점검원의 선임 기준(공동주택 3000세대, 단독세대 4000세대)에 대한 재조정도 합리적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당장 사용자시설물로 분류된 계량기의 소유권과 관리주체를 공급자로 전환하고, 원격검침과 차단 기능을 탑재한 선진형 계량기의 도입시 기존 막식계량기 기준의 교체주기(5년)를 늘리는 제도개선도 시급히 검토되어야 할 과제이다.

또 원격 다기능안전계량기의 보급 확대시 검침 및 점검원의 인력감축에 따른 사회적 합의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런 제도적 개선이 가스AMI의 보급과 함께 이뤄지지 않을 경우 또 다시 도시가스산업에서의 계량 선진화 사업은 좌초될 것이 자명하다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더불어 공동주택 내 가스사용자시설물에 대한 안전관리 주체 역시 합리적으로 바꾸는 논의도 필요한 시기이다.

계량 선진화에 따른 가스AMI 계통도.
계량 선진화에 따른 가스AMI 계통도.

 

저작권자 | 가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