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발생한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 안보가 담보되지 않은 에너지 전환이 얼마나 위험한지 몸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에너지 전환의 선봉에 있던 독일의 올해 상반기 석탄 화력 발전량이 전체 발전량의 31.4%로 전년 대비 17.2%p나 늘었다는 사실은 독일이 전력수급에 얼마나 절박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독일 슈퍼마켓에는 난방용 장작 땔감이 수북이 쌓여 있고, 이마저도 올해 8월 기준으로 작년보다 85.7%나 비싸게 팔고 있다고 하니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 다시 중세시대로 돌아간 형국이다.

우리는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 10월부터 전기요금과 도시가스요금이 소폭 인상되기는 했지만 다행히 가계와 기업이 아직까지는 감내할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에너지 공기업들의 출혈로 위기를 지연시킨 것에 불과하다. LNG 수입가격이 급등하면서 도매전기요금(SMP)이 10월 11일 기준으로 kWh당 270원을 기록하여 작년 10월의 108원 대비 2.5배로 증가했다. 한전의 올해 영업적자 규모는 40조원에 육박하고,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1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 공기업이 에너지 위기라는 화살을 소비자 대신 맞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은 자명하다.

에너지 안보는 ‘적절한 가격’에 ‘충분한 소비’가 가능한 상황을 의미한다. 해외자원개발을 통해 석유와 천연가스를 확보할 수 있다면 가장 확실하게 에너지 안보를 담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 석유·가스 자원개발율은 2020년 12%로 일본의 41%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2015년에 우리는 16%, 일본은 27%로 격차가 11%p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9%p나 된다. MB 정부 이후 해외 자원개발이 사실상 올스톱 한 상황에서 일본은 지속적으로 해외 자원 확보를 늘렸고, 우리는 방관한 결과다.

남은 수단은 특정 국가나 특정 에너지원에 치우치지 않게 장기 계약에 의해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도입하여 수급 위험을 헷징(hedging)하는 것이다. 장기 도입계약 확대를 위해서는 정교한 수요예측이 필수이다. 천연가스 수요 예측의 오차는 도시가스용보다는 발전용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현재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상의 가스 발전량을 기반으로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을 수립한다. 실제 가스 발전량이 계획된 가스 발전량보다 크면 가스공사는 부족분을 현물시장에서 비싸게 매입하고, 이는 도매전기요금에 그대로 전가된다.

장기 도입계약을 통해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수요예측이 중요하다. 하지만 산업부 내에서도 전력, 가스, 석유를 담당하는 부서 간 장벽이 존재하고, 한전과 가스공사, 석유공사 간에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민간 발전사의 천연가스 직도입, 화력발전소의 수소 및 암모니아 혼소, 전기차 확산도 장기적인 수요예측을 어렵게 하는 교란요인이다. 더불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처럼 우리가 예측하기 어려운 지정학적 위기의 발생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의 에너지 수요예측이 다차원 방정식을 푸는 수준이라면 지금은 기상예보와 유사하게 수많은 관측정보와 방정식을 슈퍼컴퓨터에 입력해서 풀어내야 하는 고난이도의 문제가 되었다. 에너지원 간 칸막이 방식의 수요 예측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에너지·환경·기술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처, 공공 및 민간 에너지 사업자, 에너지 전문가들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통합적 관점에서 수요예측에 참여해야지만 에너지 안보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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