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현재 이뤄지고 있는 가스용기와 특정설비 재검사 실태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이와 함께 안전을 고려한 적정 검사수수료 결정을 위한 표준단가제 도입 등 제도개선이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표준단가 도입 문제는 가스검사기관과 관련 업계에서 오랜 기간 거론되어 온 주요 이슈였는데 의정 단상에서 의제화된 것이다.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표준단가를 둘러싸고 검사기관과 관련업계 간 대화의 기회가 있었다. 검사기관들은 비용을 검사 의뢰자와 협의하여 결정하도록 하는 현재와 같은 방식은 물량을 둘러싼 출혈경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지적했다. 검사에 지장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 가스산업 업계에서는 표준단가 도입은 검사비를 인상하기 위한 것으로 안전은 검사기관이 책임을 갖고 검사한다면 가능한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모든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된다. 독과점이 아니라면 맞는 사실이다. 과거 공공부문에서 수행하던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였을 때 기대했던 목적도 민간에서 하면 경쟁을 통해 검사품질도 높아지고 가격도 적정선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장밋빛 기대는 적어도 우리의 현실과는 맞지 않게 됐다.

규제중에 ‘깜깜이 규제’라는 게 있다. 규제내용을 규제당국만 알고 하는 규제를 말한다. 이처럼 검사현장에서 비용결정이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검사자도, 피검사자도 만족하지 못하는 ‘깜깜이 비용결정’ 구조인 것이다. 적정한 수준에 못 미치는 가격에 의한 검사가 관련 규정에 따른 완벽한 검사로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하겠다. 검사기관도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사업자인 만큼 이러한 점은 재검사의 불편한 진실인 것이다.

토마스 홉스는 명저 리바이어던에서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보고 개인들은 자연 상태의 개인이 상존하는 불안과 공포에서 피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계약을 통해 권위를 가진 국가에 양도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오늘날에도 사회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공동체가 외면하고 각자 알아서 살아가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혼란과 위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든다.

몇 해 전 표준화 및 인증 관련 규제개선 선진 사례를 파악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A4 복사지의 규격을 만든 DIN(독일표준협회)을 찾았다. DIN은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기관으로 독일의 국가규격을 제정하고 규격 적합성에 대한 인증 수행을 통해 높은 국가경쟁력을 도모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표준화된 규격과 기준의 중요성을 실감한 적이 있다.

특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분야인 경우 매뉴얼, 코드집 등 기술적인 기준이나 표준뿐만 아니라 비용이 수반하는 영역에는 정부에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적정 표준단가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현재 자동차검사, 승강기검사, 크레인·리프트 검사 등은 물론 건설 공사 분야에도 표준시장단가를 매년 고시하고 있는 것이 그 사례다.

물론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표준단가제를 도입하는 문제는 많은 시간과 이해관계자 간 협의, 연구용역 그리고 고시 마련 등 바로 이룰 수 있는 과제는 아니다. 따라서 긴 안목을 갖고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검사 내용과 특성이 다른 만큼 모든 검사 분야를 아우르는 것보다 특정설비의 경우처럼 소형저장탱크나 탱크로리 등 공정이 유사하고 규격화가 가능한 분야에 한정하여 시행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라고 사료된다.

앞으로 산업부와 가스안전공사의 관심 속에서 검사기관과 충전·판매사업자 등 이해관계자 간에 대화와 전문적 연구용역 추진 등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가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