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냉매업체가 재충전금지용기에 충전해 판매하고 있는 R-32(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 없음).
국내 냉매업체가 재충전금지용기에 충전해 판매하고 있는 R-32(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 없음).

[가스신문 = 한상열 기자]  가정용 에어컨의 신냉매로 최근 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R-32의 MSDS(물질안전보건자료)가 수입이 이뤄지는 가운데 바꿔치기 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와 국내 냉매업계로부터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7월 국내의 한 냉매공급업체가 중국의 냉매메이커인 주화(JUHUA)社의 냉매제품 R-32를 외국의 냉매유통업체를 통해 들여오는 과정에서 이메일로 받은 주화의 MSDS는 ‘가연성가스’ 기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냉매공급업체가 7월 22일 외국의 냉매유통업체에 ‘비가연성가스’ 기준의 MSDS가 필요하다며, 재요청한 내용의 이메일이 발견되면서 의혹의 실마리가 풀려가는 양상이다. 국내 냉매공급업체가 주화의 R32에 대해 ‘가연성가스’ 기준의 냉매제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서도 굳이 다른 MSDS로 바꿔 보내달라고 한 것 자체가 법령 위반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본지가 지난해 11월 16일자 신문 7면의 ‘가짜 MSDS 때문에 냉매업체들 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허술하게 운용되는 MSDS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MSDS의 정확성 및 판단 중요

국내 냉매공급업체들은 중국 등에서 제조된 냉매를 들여와 별도로 마련한 냉매제조(충전)시설을 통해 용기에 충전, 국내에 유통시키고 있다. 이러한 냉매제조시설도 고압가스안전관리법에 따라 적법하게 갖춰야 하는데 바로 이 MSDS에 표기된 폭발한계에 따라 ‘가연성가스’와 ‘비가연성가스’로 갈리게 되므로 MSDS의 정확성 여부가 시설투자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고법 시행규칙 제2조 제1항 제1호(정의)에는 ‘가연성가스’란 “공기 중에서 연소하는 가스로 폭발한계의 하한이 10% 이하인 것과 폭발한계의 상한과 하한의 차가 20% 이상인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외국의 냉매유통업체가 당초 국내 냉매공급업체에 보낸 주화의 MSDS에는 폭발한계 상한이 33.4%, 하한이 12.7%로 표기돼 있었다. 그 차이가 20.7%이므로 가연성가스로 분류된다.

이에 국내 냉매공급업체가 이메일을 통해 한국의 기준에 맞지 않으니 다른 회사의 MSDS를 보내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주화의 제품을 그대로 수입, 국내에 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회사가 냉매제조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한국가스안전공사에 제출한 MSDS는 폭발한계 상한이 29.9%, 하한이 13.8%으로 표기돼 있었다. 그 차이가 16.1%이므로 비가연성가스로 분류, 이미 일회용 용기에 충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외국의 냉매유통업체에서 첨부파일로 보내온 MSDS. 폭발 상한과 하한의 차가 20.7%로 가연성가스임이 확인됐다.
외국의 냉매유통업체에서 첨부파일로 보내온 MSDS. 폭발 상한과 하한의 차가 20.7%로 가연성가스임이 확인됐다.

비가연성 시설서 가연성 제조

가연성가스 제조시설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방폭설비를 추가로 설치해야 하고 재충전금지용기(일회용 용기)가 아닌 재충전할 수 있는 용기를 적용해야 하므로 비가연성가스 제조시설에 비해 훨씬 많은 투자비가 든다.

그래서 사업자들은 투자비가 적게 드는 ‘비가연성가스’로 판단 받아 사업하는 것이 이득이다. 주화의 제품은 ‘가연성가스’에 속하므로 ‘비가연성가스’ 제조시설을 통해 충전하는 것은 위법행위다.

이와 관련해 외국의 냉매유통업체로부터 주화 제품을 수입한 회사의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왜 외국의 냉매유통업체에 MSDS를 재요청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기자는 해당 이메일을 누구에게 전달 받았느냐”고 오히려 받아치면서 “앞으로는 ‘비가연성가스’ 기준에 맞는 냉매를 들여와 사업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더욱 큰 문제는 또 다른 냉매업체의 한 민원인이 MSDS 위변조 등 허술한 관리와 관련해 가스안전공사 본사의 시설검사 관련 부서를 찾아 알린 데 이어 기동단속팀에 신고했으나 위법행위를 한 업체가 제공한 서류만 받아 회신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가스안전공사의 검사업무관련 담당자는 “우리 공사는 수사권이 없으므로 해당업체가 제출하는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서 “R-32와 관련한 민원으로 인해 국회의원,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보고하느라 골치가 아픈 실정”이라고 말했다.

냉매업계 일각에서는 가스안전공사가 ‘가연성가스’ 기준의 중국산 R32 냉매를 놓고 울산지역에서는 ‘가연성가스’기준으로, 경남서부지역에서는 ‘비가연성가스’ 기준으로 각각 판단, 기술검토를 함에 따라 행정처리 미숙 또는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국내 냉매업체가 외국의 냉매유통업체에 보낸 이메일.
국내 냉매업체가 외국의 냉매유통업체에 보낸 이메일.

민원인의 신고 무시, 비판 커

현재 중국에서 생산되는 R-32는 대부분 ‘가연성’ 기준으로 출하하고 있으며, 가격이 비교적 저렴해 국내에서도 이를 수입, 공급하고 있다. 다이킨(일본), 아케마 등이 제조하는 제품은 폭발 상한과 하한의 차이가 각각 16.1%, 16.0%로 ‘비가연성’ 기준으로 생산하나 가격이 비싼 편이다.

경남서부지역에서 ‘비가연성’ 기준으로 냉매제조시설을 갖춘 한 업체는 가스안전공사의 기술검토 당시 다이킨 등 ‘비가연성’ 기준으로 작성한 외국 냉매제조사의 MSDS를 가스안전공사에 제출했으며, 가스안전공사는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완성검사까지 통과시켰다.

하지만 가스안전공사는 위변조의 의혹을 받는 MSDS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민원인의 제보를 대수롭지 않게 여김으로써 결국 냉매업계으로부터의 비판도 면키 어렵게 됐다.

이번 R-32 MSDS의 석연찮은 바꿔치기로 인해 상대적으로 손실을 보게 되는 업체 측에서는 해당 업체가 해명을 해야 하고, 민원인의 신고에 대해 소홀이 대처한 가스안전공사에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것이 선행되지 않을 경우 막대한 투자로 손실을 입게 된 업체는 경찰에 고발 또는 소송을 벌일 계획까지 밝히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가연성가스를 기준으로 설치한 제조시설, 재충전용기 구입 등에 따라 100억원에 육박하는 회사가 있으며, 가연성가스 용기보관실을 새롭게 갖춰 판매허가를 받은 냉매판매업체도 많아 그 금액은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삼성전자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R-32를 사용해 에어컨을 생산하고 있으며, LG전자도 올해부터 R-32를 사용한 에어컨을 생산하게 되므로 국내 냉매업계에서는 가스안전공사가 이번 논란과 관련해 하루 속히 명확한 기준을 적용하는 등 바로 잡아 줘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에어컨산업에 큰 혼란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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