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한 고압가스충전소가 법령에 따라 방호벽 등의 설비투자를 통해 마련한 용기보관장소
수도권의 한 고압가스충전소가 법령에 따라 방호벽 등의 설비투자를 통해 마련한 용기보관장소

[가스신문 = 한상열 기자]  산소, 질소, 아르곤, 탄산, 수소, 아세틸렌, 헬륨 등의 산업용 고압가스는 만질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제품이라는 특성이 있다. 규격화된 용기에 충전해 판매하는 경우 경쟁업체 제품의 가격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액화한 가스를 다량으로 판매할 때는 기화하면서 그 양이 탄력적이기 때문에 마진의 측면에서 적잖은 차이가 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장탱크를 통해 고압가스를 판매하는 경우 한때 높은 이익을 누리기도 했다.

또 고압가스안전관리법에서는 고압가스 충전을 제조로 분류하기도 하나 어찌 보면 유통에 더 가까워 덤핑이나 과당경쟁을 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의 이익이 보장돼 사업이 안정적이라는 견해가 많다. 이 같은 특징을 지닌 고압가스 충전 및 판매업은 사업을 영위하면서 과당경쟁, 가스사고 등의 큰 과오만 없으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국의 고압가스충전업체 가운데에는 매각을 추진하는 곳이 적지 않다. 오랫동안 고압가스충전소를 운영하면서 어느 정도의 부를 얻었으나 비전이 불투명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본지는 최근 고압가스시장에서 도소매의 단계를 담당하는 충전 및 판매소들이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고 하는 등 결코 녹록지 않은 경영환경을 되짚어보고, 고압가스 분야의 몇몇 관계자의 의견을 들어 돌파구는 없는지 살펴본다.

현재 고압가스 충전 및 판매업체들에게 들이닥친 고충이 있다면 고정비의 급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건비 부담이 그다지 크지 않았고, 안전관리에 따른 비용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이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요즘 고압가스업계는 그 어떤 것보다 구인난에 발목이 잡혀 있는 양상이다. 대규모 온라인유통회사, 택배회사 등 배달과 관련한 산업이 성행하면서 가스배송직까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인력난에 발목 잡힌‘지속성장’

경기남부지역의 한 고압가스충전사업자는 “최근에 용기운반차량을 통해 배송하는 직원이 그만 둬 물량이 많은 건설현장에 산업용가스의 공급을 포기했다”고 설명하고 “좋은 조건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물량 확대를 위해 영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송할 직원이 없어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와 관련해 고압가스충전업계에서는 고압용기를 다루며, 운반차량으로 배송하는 일은 안전관리까지 해야 하는 등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라면서 가스배송직에 상응하는 처우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격경쟁에 취약한 고압가스의 특성상 제값을 받는 시장을 조성하는 것도 아직은 쉽지 않아 당분간 가스배송직원을 채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온라인유통업체들이 내놓은 채용공고만 보더라도 도심권에서 일하면서 더 높은 보수를 준다고 해 선호하고 있다.

인력난과 관련해 고압가스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제조원가를 세밀하게 분석한 후 적정마진까지 고려한 가격을 가스사용업체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직원들로 하여금 다니고 싶은 회사로 인식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안전관리비 상승 따른 부담 커

그동안 고압가스업계에서는 법령에서 정한 기본적인 안전관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중대재해처벌법의 단계적 시행으로 인해 해당 기업의 대표자가 안전성 확보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법령에서 정한 안전관리와 관련한 과정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철저하게 확인하겠다는 것이어서 안전관리비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도권의 한 고압가스사업자는 “안전관리책임자들도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노후시설 또는 노후된 부품의 교체를 위해 품위가 올라오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면서 “회사 측에서도 노후된 정도에 따라 시설개선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비 부담이 한층 커졌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고압가스업계에서는 탱크로리 충전설비를 별도로 갖춰야 하고 용기보관장소도 마련해야 하는 등 각종 설비나 시설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게 늘었다.

또 경쟁 관계에 있는 고압가스업체 간 분쟁으로 인해 가스안전공사 기동단속팀에 신고하거나 관할 경찰서에 고발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소모적인 비용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고압가스업계 자정능력 키워야

고압가스사업은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내포돼 있으므로 정부에서 허가업종으로 분류, 관리하고 있다. 허가업종은 사업을 준비할 때 시설투자에 따른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소요되나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하므로 일장일단의 측면도 있다.

하지만 고압가스업계 일각에서는 허가업종과 관련해 비용만 소요되는 업종이라고 인식하는 등 시설투자에 따른 비용이 아까울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각도 많다. 이에 따라 안전관리나 허가시설 등에 드는 비용을 투자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경기서부지역의 한 고압가스사업자는 “우리 업계 일각에서는 안전과 관련한 규제를 무조건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법령을 완화하기보다는 사업자 스스로 안전과 관련한 규정을 잘 준수하는 등 안전관리 수준을 높이고, 투자 없이 할 수 없는 사업으로 인식돼야 신규사업자들의 진입을 억제할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고압가스입찰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대상이다. 현재 고압가스구매입찰의 형태를 보면 안전관리가 완전히 무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고압가스사업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고압가스가 아무리 전국적인 판매가 가능한 품목이라 해도 고법에서 정한 공급자 의무 등을 위해 안전 점검을 하도록 명시돼 있는데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대납을 전제로 입찰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에 사업장을 둔 고압가스공급업체가 부산, 여수 등 남부지역에 위치한 가스사용업체의 입찰공고에 응찰하는 사례가 많다. 처음부터 가스를 직접 공급할 목적이 아닌 대납(위탁운송)을 통해 돈만 벌면 된다는 식으로 입찰에 참가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고법에도 대납을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규정이 없기 때문에 안전관리 사각지대로 남은 실정이다. 정부가 나서 가스사업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납을 근절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가스공급업체들은 입찰참가자격 등과 관련해 부당한 것이 확인되면 입찰을 부치는 가스사용업체에 통보, 하루속히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입찰 과정에서 자격 미달 등 파울하는 가스공급업체가 있는 경우도 관련 사실을 공유함으로써 스스로 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제 이익만 좇던 시대는 끝났다. 배송해야 할 직원이 부족하니 물량 확대를 위한 영업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 안전관리와 관련한 시설투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고정비의 지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은 물론 만약의 사고 발생 시 회사가 휘청할 수도 있으므로 고압가스 사업에 있어 최고의 마케팅은 안전관리라는 데 고압가스사업자들도 크게 공감하는 분위기다.

앞으로는 안전관리를 잘하는 가스공급업체가 업계를 선도하며 지속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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