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이나 연예인처럼 멋진 몸매를 갖고 싶은 마음은 다들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식단이나 운동법을 그대로 따라하면 얼마 동안은 체중감량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요요현상으로 몸은 더 나빠진다.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범위에서 식단도 개선하고 운동량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국가적 노력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9년 12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수정하고, 2020년 10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후속조치로 2021년 10월 2030 NDC 상향안도 발표했다. 한국의 경제수준과 위상에 걸맞게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동참했다.

그러나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 다른 차이가 하나 있다. 온실가스 감축노력이 선언적 수준을 넘어서 법제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에 온실가스감축목표 40%가 명시되어 있고,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도 각각 전기사업법과 도시가스사업에 근거한 법정계획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추정한 전력수요에 기반해 전원믹스와 신규 발전설비 물량을 결정하고, 이 전원믹스에 맞춰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에서 천연가스 도입량을 산출한다. 이들 계획은 실행계획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제약을 반영해서 최대한 실행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결정된다.

그러다보니 상기 계획들이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도록 계획간 정합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현재 여건으로부터 미래를 계획하기 보다는 2050년 목표 달성을 위해 중간과정을 맞춰나가자는 논리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은 매년 연간 에너지전망(Annual Energy Outlook)을 발표한다. 2050년까지의 에너지수요, 전원믹스 등의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상세한 수치가 담긴 엑셀 파일과 함께 제공한다. 특이한 점은 기준 시나리오 외에도 경제성장률, 유가, 재생에너지 비용, 석유와 가스 공급 등이 각각 높거나 낮은 8가지 시나리오에 대한 조건부 전망도 동시에 제공한다. 이 보고서는 미국 에너지시장의 방향성을 제시하지만 그렇다고 미국 정부의 정책이 여기에 구속되지는 않는다.

세계적인 에너지기업 BP도 매년 에너지전망(Energy Outlook)을 발간하는데, 2050년의 온실가스배출량을 2019년 대비 95% 저감하는 탄소중립 시나리오 외에도 온실가스를 75%만 저감하는 가속(Accelerated) 시나리오와 현재의 상황과 기술수준을 반영해서 온실가스를 30%만 감축하는 뉴모멘텀(New Momentum) 시나리오에 대한 전망치를 동시에 제공한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 천연가스 소비가 2019년 대비 40% 수준으로 급감하나 뉴모멘텀 시나리오에서는 오히려 1.2배로 늘어날 정도로 시나리오별 전망치는 큰 차이를 보인다.

탄소중립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구속력 있는 정부 계획을 여기에 맞추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단일한 전망치에 근거하여 에너지 정책을 이끌어 갈 만큼 정부가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지, 정부가 계획한대로 시장이 움직일지 의문이다.

우리도 법정계획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전망(Outlook)을 제시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2050 탄소중립에 맞게 역설계된 에너지계획이 현실과 맞지 않을 때 초래할 사회적 비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사회적 계획자(social planner)가 되기에는 우리의 에너지시장이 이미 너무 무겁고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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