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재 윤증의 13세손인 윤완식 한국효문화원 이사가 고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소재한 윤증고택(尹拯故宅)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 명재 윤증(明齊尹拯)선생(1629∼1714)이 건축, 기거했던 집으로 지금도 전국의 고건축 전문가들과 전통문화 연구자, 대학생 및 일반인들이 방문하는 필수 답사코스로 매년 약 1만5천여명 이상이 다녀가고 있다.

윤증고택은 300년이 지난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전통미를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은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거주하면서 고택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 기자가 윤증고택을 방문했을 때 명재의 후손인 윤완식씨(現 한국효문화원(사) 이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직접 재배해 수확한 구절초(九節草)차를 내놓으며 윤증 선생 및 고택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윤 이사는 명제 13세손이며 자신의 중학생 아들(윤형섭)이 명재 14세손으로 종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고택 앞의 연못을 지나 보수중인 사랑채 왼편의 중문을 통해 안채를 안내했다. 안채는 문 밖에서 바로 보이지 않도록 벽을 설치해 방문자와 말을 주고 받을 수 있게 설계했고 특히 발 모양만 볼 수 있도록 해 방문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이 특이하다.

안채의 마루는 보통의 집들보다는 훨씬 넓게 만들어 이곳에서 많은 손님을 만나거나 회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나무기둥도 4각형에서 8각형으로 만들어 생활에 편리를 추구했으며 천장의 보 또한 굉장히 큰 통나무로 만들었으나 300년이 지난 지금도 갈라짐을 볼 수 없다. 사랑채에 앉아 멀리 동남쪽을 바라보면 계룡산 바위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오고 시선이 마당으로 향하면 금강산을 형상화해 돌로 만든 석가산(石假山)을 볼 수 있다.

그 외 윤증고택은 여기저기 옛 건축의 과학적인 면도 엿볼 수 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윤증고택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 고택을 통해 내려오는 조선의 선비정신 때문이다. 윤증의 본관은 파평이며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유봉(酉峯)으로 대대로 성리학자 가문에서 자랐으며 우암 송시열, 윤휴 등에게 수학했다.

그러나 명재 선생은 스무 번이나 벼슬을 주겠다는 조정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는 선비정신을 보여주었다. 즉 그가 벼슬을 하게 되면 여러 일에 시달려 공부에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이처럼 명재 선생이 우의정 자리까지 거절하자 당시 사람들은 그에게 ‘백의정승’이란 칭호를 선사했다. 재야에 머무르며 명재가 가장 역점을 둔 일은 ‘종학당(宗學堂)’을 지어 후진 교육에 전념한 것이다.

종학당은 지금의 중등 및 대학과정을 모두 포함해 가르쳤다. 윤증고택 방문자의 약 70%가 대학생임을 감안할 때 종학당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게 보인다. 그 외 이곳에는 사물놀이와 국악연주, 시 낭송회 등이 열려 찾는 이에게 더 깊은 추억을 주고 있다.

한편 윤증고택은 오는 5월부터 입장을 유료화로 전환하며 사랑채에 숙박도 계획하고 있다.

● 가는길 www.yunjeung.com 참조

저작권자 | 가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