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훔치다’는 2008년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로 국내 역사 추리소설계에 돌풍을 몰고 왔던 조완선 작가의 두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1990년대 중반 실제로 존재했던 일본 안국사 초조대장경 도굴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전설의 대장경’이라고 알려진 고려 왕조 최대 국책 프로젝트인 초조대장경. 이 천하의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한국과 일본의 전설적인 도굴꾼. 그리고 그들의 배후를 은밀하게 조종하는 한국과 일본 정부의 음모가 작가 특유의 정갈한 문체로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도굴꾼, 보물사냥꾼, 문화재 밀매꾼 등 문화재 주변의 아웃사이더들의 집념과 모험을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거쳐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천년을 훔치다’는 국내 소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소재, 빠르고 리얼한 스토리 전개, 치밀하고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역사 미스터리의 진수라 할 수 있다.

고려 시대의 대보(大寶)인 ‘초조대장경’ 경판이 실존해 있다는 고문서를 발견하고 그 뒤를 집요하게 쫓는 한국인 도굴꾼 장재석. 죽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전설의 대장경을 찾아 나선 일본인 도굴꾼 하야코.

장재석은 문화재청 정찬국의 지시에 따라 일본 남선사에 초조대장경의 비밀을 찾아 나서고, 하야코는 보물사냥꾼인 최만준과 함께 한국에서 ‘천향’의 발자취를 쫓는다.

하지만 하야코와 함께 초조대장경을 찾던 최만준은 시체로 발견되고, 장재석을 이용해 정보를 입수한 정찬국 역시 주검이 된다.

우연히 조우하게 된 하야코와 장재석의 조부인 장기봉과 이라부의 인연으로 한일 네 도굴꾼들은 힘을 합쳐 천향의 비밀에 가까이 다가간다. 이윽고 초조대장경이 안치되어 있는 천향고를 찾아내지만, 장재석은 승려들에게 붙잡혀 수장고에서 죽음에 처할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도굴 실력은 알아주지만 성질이 고약하고 이기적이라는 평이 지배적인 한국인 도굴꾼 장기봉. 남을 배려하는 교토의 신사라는 별명을 가진 일본인 도굴꾼 이라부.

아버지를 내팽개쳐 두는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는 장재석. 할아버지를 도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하야코.

친절한 지식인으로 보이지만 속이 까만 박물관 관장 등 이 소설은 팩션이라는 장르에서 소재를 풀어나가는 장기 말에 불과했던 천편일률적인 인물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인물상을 그려 냈다.

비단 ‘천년을 훔치다’가 장르의 틀에 국한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기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생각했다. 만일 영화화 한다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이라고.

*조완선 작가는 인천에서 태어나 단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반달곰은 없다'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가스신문에서 취재기자로 근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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