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소, 질소 등의 산업용 액체가스를 글씨로 쓰고 지우면서 번갈아면서 충전한 흔적이 보이는 초저온용기. (사진은 순천사고와는 관련 없음)

지난해 8월 전남 순천의 한 병원에서 환자가 산소가 아닌 아르곤을 흡입해 뇌사상태에 빠진 사고는 초저온용기(LGC)의 교차충전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고를 유발시킨 LGC는 아르곤(Ar)으로 각인됐으나 색깔띠는 녹색으로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현재 국내 의료용고압가스 및 산업용가스분야의 안전관리실태를 그대로 보여준 것으로 관련규정의 위반요소가 다양하게 드러나 있다.

먼저 의료전용 LGC에 충전하지 않은 용기를 병원에 납품했다는 것이다. 의료용산소를 병원에 공급하려면 각인부터 산소(O₂)로 표기해야 하며 색깔띠도 흰색으로 칠한 것이어야 한다.

경인지역의 한 의료용가스충전사업자는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 이처럼 기초 안전관리규정을 무시, 가스를 공급함으로써 환자를 중태에 빠트리게 한 것은 가스공급자로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앞으로 이 같은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법령 강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GC 교차충전과 관련한 제도 개선의 기회는 지난 2009년 한차례 있었다. 2008년 말 수도권의 한 산업용가스충전소에서 액체산소를 충전해야 할 LGC에 액체질소를 충전해 횟집에 납품함으로써 활어가 모두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 용도에 맞지 않는 가스를 충전한 이 사고로 가스사업자들은 4000만원 안팎의 피해보상금을 횟집에 물어줬다.

그 이전 수도권의 또 다른 가스공급업체는 회색으로 도색된 액체질소 LGC에 액체산소를 충전, 열처리공장에 납품해 결국 열처리제품의 불량은 물론 기계까지 망가져 무려 1억원 상당의 보상금을 지불하기도 했다.

이러한 LGC 교차충전으로 인한 사고가 본지의 보도(2009년 1월 909호 등)를 통해 알려지면서 가스안전공사가 일제 정비에 나서 안전관리가 한층 강화되는 듯 했으나 실제 고압가스충전현장에서는 달라진 게 없었던 것으로 이번 사고를 통해 다시 드러났다.

고압가스업계에서도 이 같은 사고의 원인에 대해 산소, 질소, 아르곤 등의 LGC 충전구(연결치구·숫나사) 규격이 서로 같거나 중구난방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지적한 바 있다.

물론 LGC 최초 구입 시 표기된 각인, 가스명, 색깔띠 등에 따라 용도에 맞는 가스를 충전하면 이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고압가스충전 및 판매사업자들은 200만원 안팎으로 형성된 초저온용기를 구입하지 않는 등 비용을 줄이기 위해 용도에 맞지 않는 가스로 교차충전함으로써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고압가스업계에서는 일부 사업자들이 가스안전을 터부시하는 등 LGC의 색깔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산소, 질소, 아르곤 등 가스의 충전구마다 규격을 각각 달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충전구 규격화에 대해 본지와 고압가스업계가 강하게 주장해 왔지만 가스안전공사가 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면서 제도 개선을 미룬바 있다.

당시 가스안전공사의 고압용기담당자는 한 대의 LGC는 몇 가지 산업용가스 충전에 적합하도록 설계됐으나 교차충전하라는 뜻이 아니며 가스의 교차충전은 현행법으로도 금지돼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다만, 교차충전을 해야 한다면 전문검사기관을 통해 용도변경을 거쳐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LGC의 교차충전으로 인한 이번 순천의 사고에 대해서도 가스안전공사의 관계자는 가스사업자가 규정을 위반해 일어난 것이며 법 개정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용가스메이커인 P사의 경우 산소 및 질소의 충전구를 각각 5/8인치, 1/2인치 등 서로 다르게 정해 LGC의 충전구 즉 연결치구를 아예 용접함으로써 용도에 맞지 않는 가스의 충전 즉, 교차충전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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