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 중에 전공이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얼 카너먼’이다. 그가 제시한 이론 중에 ‘인간은 미래가 불확실 할수록 비합리적이고 편향적인 사고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정보화시대를 두고 한 말일 수도 있고 자신의 전공과 다소 다른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것의 예측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경제적인 선택은 가장 기본적인 심리적 판단과 변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결정이라 해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사람과 제품이 무한 경쟁시대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무한하기에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가 저성장과 침체에서 신성장동력을 찾고 있는 불확실한 미래에서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결정하였지만 선택의 장애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물리학의 불확정성원리와도 연관시켜 볼 수 있다. 움직이는 물질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론이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다는 궤변이자 철학이기도 하다.

인류의 에너지 변화를 물질의 상(相, phase)으로 볼 수 있는데 불과 200년 전만해도 에너지원은 나무였으며 이어 산업혁명으로 석탄의 등장, 그리고 세계대전을 통해 석유의 생산과 소비가 급속도로 개발되었다. 또 불과 50년 이내에서 석유류 가스의 대량사용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어떤가? 가정에 공급되는 가스는 대부분 가장 가벼운 탄화수소인 메탄이 주성분인 도시가스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고체, 액체, 기체로의 변환 즉 상변화가 일어났다. 얼핏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대단히 중요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취급이 어렵고 보관하기 힘들며 위험하다고 하는 기체를 이제는 아무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의 연료를 사용할 때는 당연히 반대가 심했다. 석유를 사용하기 시작할 때 유통과 화재의 위험이 나무와 석탄에 비해 너무 위험했고, 석유에서 가스로의 전환 때는 더 말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가스를 사용함에 위험해서 못쓰겠다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에너지원의 분자구조와 열량대비를 볼 때 가스로 전환되면서 탄소대비 수소의 비율이 현저히 높아지면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럼 에너지 패러다임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의 최후 에너지는 상(相)을 유지하는 것으로는 수소임이 분명하다. 취급도 도시가스보다 수월치는 않다. 그러나 이산화탄소가 전혀 발생되지 않는다.

위험하다고 위험이 덜한 합리적인 방법에서 다시 나무와 석탄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럴 가능성은 너무나 희박하다. 이것 또한 미래의 에너지가 경제적인 가치와 경제성으로만 평가한다면 수소가 자리매김하기는 어렵지만 불확실한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볼 때 오히려 수소로의 변환은 당연하다.

오히려 비합리적이 편향적인 사고에서 미래의 확실한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안전은 그에 상응하는 기술에 개발될 때에만 새로운 에너지가 사용되니 너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원자력발전의 위험이 두려운 것은 아직 그런 에너지를 다룰 안전한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인재는 언제나 생길 수 있는 변수이기에 변수를 고정하는 시스템은 인류가 살아 있는 동안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요즘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청정에너지, 수소경제 등의 용어는 수소에너지가 성큼 우리 곁에 와 있으며 새로운 에너지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이다. 에너지원의 상변화를 기술과 산업에 잘 적용할 때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가 확실한 우리의 편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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