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은 무지(無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또 못 하는 것(can’t)과  안하는 것(don’t)은 다른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에는 몰라서 못하는 것보다 알고도 못하거나 알아서 더 하지 않는 일이 많은 것 같다.

미세먼지는 역사가 오래된 오염원이다. 필자가 학위를 마치고 한국가스공사에 입사했을 당시, 1996년 즈음에 환경경제학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스스로를 베세토(BeSeTo: 베이징, 서울, 동경의 영어철자의 앞에 두자를 이어 조합한 단어)라고 불렀다. 당시 베세토가 주축이 되어 동북아 3국간의 환경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학술대회를 연 적이 있다.

벌써 20년이 지난 얘기다. 당시 베세토 회의에서 중국 공무원이 “황사는 그 입자가 크고 무거워서 한반도까지 날라가지 않는다”는 주장을 듣고 우리 한국 전문가들은 당황했다. 어쩌면 저리도 뻔뻔할 수 있을까?

그때 한국 전문가들은 “황사가 무겁다는 논리를 백번 져준다 하더라도 황사와 함께 날라오는 미세먼지는 인체에 매우 유해하다. 작기 때문에 더 치명적이다” 라는 논리로 반박했다. 그 때 벌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황사와 미세먼지 간의 구분이 명확했던 것이다.

대외적으로 환경정책의 논리가 아무리 옳으면 무엇하겠는가? 이후 국내 에너지정책은 석탄화력을 늘이는데 치중해왔다. 수송에너지는 또 어떠한가? 에너지 조세개편을 수차례 시도하면서도 경유를 대체할 세수확보를 빌미로 개편 다운 개편을 하지 못했다. 시장논리와 국민정서를 내세워 전력가격을 왜곡시키는데 열중해 왔다.

그렇다고 환경정책이 퇴보만 한 것은 아니다. 그나마 수도권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2008년부터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을 대상으로 배출권거래를 시행하였다. 성과는 있었다. 이 두 오염원이 확연히 감소한 것이다. 그 때에도 배출권거래제 무용론이 있었으나 감축효과를 총량으로 확인한다는 점은 농도제에서 총량제로의 전환에 동기부여를 톡톡히 했다. 그 때 미세먼지가 규제대상에 포함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러나, 제도는 제도일 뿐이다.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정책효과는 크게 달라진다. 아무리 시장메커니즘이 대세이고 선진화된 제도라 할지라도 어느 한 제도가 모든 영역을 커버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배출권거래를 들여다 보자. 배출권거래는 그 적용대상이 분명해야 한다. 미세먼지와 같이 중국-화력발전-경유차 사이에서 마녀사냥을 해야 하는 오염원은 배출권거래만으로는 정책효과를 거둘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출권거래는 가격시그널을 제공하는 덕목을 갖췄다. 가격시그널은 자기가 감축하는 비용이 시장가격 보다 적은지 큰지를 알려주는 좋은 잣대이다. 즉, 가격시그널이 없이는 기술개발이 어렵다. 이제 배출권거래는 온실가스 감축기술 개발에 가격시그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는 미국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시한 에너지안보 리스크 순위 상 22위이다. 노르웨이가 1위, 미국이 6위, 일본이 15위, 러시아가 17위, 중국이 20위인 것에 비하면 에너지안보 전략이 개선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미국 대한상공회의소가 정의한 에너지안보 리스크는 다분히 에너지자립도를 에너지안보로 보고 있지 않다. 그 증거는 러시아와 브라질이 상위권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에너지안보는 지속가능한 체제가 담보되어야 한다. 우리의 에너지기본계획은 표면적으로는 에너지안보와 저탄소 기조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가정을 두고 있다. 석탄발전의 청정기술과 원전의 폐기물관련 기술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가정과 에너지가격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전제이다. 물론 필자는 이 가정이 모두 현실화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과 거리가 먼 정책은 또 다른 마녀를 탄생시킬 것이다. 마녀들과 되지않은 싸움을 하기보다는 차분히 앉아 실현가능한 정책효과를 담보로 에너지기본계획을 수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는 훗날 우리 후손에게 그때 하지 않은 것(did not)이 아니라 못했다(could have done)는 무기력한 변명은 하지 않아도 되리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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