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모르고 공급사는 부담스러운 AMI사업,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가스신문=주병국 기자] 정부가 지난 7월 에너지신산업 육성분야 중 하나로 도시가스분야에 원격검침계량시스템(AMI) 선진화 사업을 추진키로 확정,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전기 및 가스분야에 스마트그리드를 구현하겠다는 것으로, 약 5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2020년까지 1600만호의 기존 기계식 계량기를 전량 무선원격검침계량시스템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가스분야에 AMI사업을 통해 검침 및 계량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안전도 보다 강화해 소비자의 편익을 도모하겠다는 복안이다. 여기에다 원격검침계량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관련 산업을 육성, 발전시켜 새로운 신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깔려 있다.

정부의 정책 방향과 목적만 놓고 보면 분명 도시가스분야의 원격검침계량시스템 선진화 사업은 관련분야의 기술력도 높이고, 소비자의 편익까지 도모하는 만큼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관련업계가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 다르다. 정부가 투입하겠다는 자금 역시 도시가스사와 소비자의 몫이며, 기기관련 신뢰성, 투자비용과 자산·관리주체, 공급비용 반영여부 등 여러 가지 현안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한 원격검침계량시스템 선진화 사업에 도시가스업계는 무한 신뢰를 보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이번 기획특집호에서는 정부가 추진의사를 강력히 표명한 원격검침계량시스템 선진화 사업에 대한 ‘허와 실’이라는 양면성과 도시가스업계의 반응 그리고 사업 추진에 앞서 해결해야 할 선행과제 등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본다.

 

2022년까지 1600만호 보급

도시가스업계와 마찰을 빚으면서도 ‘도시가스 원격검침시스템 선진화’ 작업은 결국 돛을 올렸다.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원격검침시스템 선진화 작업은 가스AMI분야에 5000억원의 자금을 투입, 2022년까지 1600만호의 기존 기계식 계량기를 원격검침계량기로 교체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기와 가스분야의 전국 스마트그리드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이다.

인력으로 검침했던 기계식 계량기를 앞으로는 무선화 시키고, 여기에다 안전차단장치까지 갖추도록 원격검침계량시스템을 선진화 하겠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당초 해당 사업을 2016년부터 시행하려 했지만 도시가스업계의 반발과 관련법 및 규정 정비 등의 이유로 5개년 추진사업으로 전환했다. 더불어 도시가스사와 지자체에 ‘사업의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 설득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이 같은 계획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우선 원격검침계량시스템 선진화 사업에 참여할 도시가스사들의 자발적 참여 의사를 묻고, 곧 시범사업자를 선정한다.

당초 시범사업자로 코원에너지서비스, 부산도시가스, 강원도시가스, 경동도시가스 등 4개사가 선정되었으나, 다시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시범사업에 몇 개의 민간사를 참여시킨 후, 시범운영을 하고 몇 년부터 원격검침계량기(다기능계량기)를 본격적으로 보급하겠다는 세부적인 사업 계획은 아직 수립되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시범사업자가 선정된 후 연말까지 3개월 이상의 시범운영을 거쳐 ‘기계식→원격검침계량기’로 전환시 발생될 수 있는  △기기 및 통신상의 문제점 △시스템의 안전성과 안정적 운영 △공급사와 수요자간의 데이트 전송 등 쌍방 간의 데이터 분석 및 통신상의 애로점이 없는지를 시범운영을 통해 발굴하고, 개선하는 등 검증 절차를 갖겠다고 한다.

시범운영 후 정부는 2022년까지 전국 가정용 세대인 1687만호에 기존의 기계식 계량기를 원격검침계량기로 전량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 올 3월 열린 ‘GAS KOREA 2016’에서 K업체는 자사가 개발한 원격검침계량시스템을 산업부 및 업계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도시가스업계, 정책 공감하나 부담 커 

AMI사업에 대한 전국 33개 도시가스사의 입장은 외적으로는 정책에 ‘공감’ 하나 내적으로는 ‘부담스럽고 신뢰하기 어려워’ 사업 반대에 무게를 좀더 두고 있다.

이는 과거 정부의 주도적인 정책 아래 시행했던 원격검침시스템 보급 사업이 실패라는 경험을 해 봤기 때문이다. 2004년 당시 1년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정부는 서울을 비롯해 5대 광역시에 5만대의 원격검침시스템을 설치 및 운영토록 하고 2016년까지 매년 58만대를 설치토록 했지만 시행 4년 만에 중단됐다.

4년간 원격검침시스템은 수도권에 약 30만대, 지방권에 약 10만대를 설치했으나 현재 1%도 가동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며, 당시 도시가스업계가 4년간 부담했던 설치비용만 약 260억원에 이른다.

정부 정책을 믿고 따랐던 업계는 기기오류에 따른 민원 폭증과 투자비용만 고스란히 떠 안은 뼈아픈 경험을 했다.

이렇다보니 도시가스업계는 이번 AMI사업 역시 기업에 투자 손실과 책임만 남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004년 당시와 현재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정부가 시장조사와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다, 업계의 의견도 수용하지 못했다. 지금도 정부의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다만 정부가 도시가스업계로부터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고 지자체 또한 사업에 적극 협조토록 참여시키겠다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불안한 게 현실이다. 특히 시행에 앞서 해결해야 할 선행과제도 많고, 본 사업을 통해 소비자의 편익까지 도모하겠다고는 하나 소비자의 의견과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가스업계는 정부가 ‘정책을 믿고 따라와 달라’고 하지만 AMI사업에 앞서 해결과제부터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서라도 업계와 소통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투자비용 5년간 1조원, 소비자 부담

업계가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문제 중 으뜸은 바로 투자비용이다.

지난 7월 정부가 AMI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예산 5000억원은 전적으로 도시가스 소비자와 공급사의 몫이다. 정부는 이 사업과 관련해 단 한푼도 별도의 지원예산은 없다.

그리고 정부가 전국 1659만호에 보급하겠다고 하는 원격검침계량시스템은 다기능계량기로 기존의 기계식 계량기(G2.5 2만원 내외)보다 최소 3배에서 4배 정도 비싸다. 제품개발 업계에 따르면 통상 가정용 원격검침계량기는 7~9만원 대 수준이라고 하며, 대량공급시 6만원 대로 낮출 수도 있다고 하나 기존의 기계식 계량기보다는 분명 3배 이상 비싸다.

이런 계량기를 정부는 2020년까지 1659만호에 보급하겠다고 하니, 사업 완료를 위해서는 한해 320만대(평균)가 설치되어야 가능한 수치다. 그리고 이를 수도권과 지방권으로 나눌 경우 수도권은 한해 200만대, 지방권은 160만대의 원격검침계량기가 각 가정용 세대에 설치돼야 한다.

따라서 수도권 회사의 경우 한해 최소 20만호 또는 28만호에 다기능계량기를 보급해야 2020년까지 해당 사업이 완료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수도권 도시가스사가 부담해야 할 초기 투자비용은 최소 100억원 이상 소요된다.

게다가 도시가스업계 전체가 5년간 부담할 투자비는 1조원(1659만호×6만원)에 이른다.

 

초기투자비용 회수 여부 관건

이런 막대한 비용을 도시가스사가 전적으로 부담할 수 없는 상황이며, 부담 주체는 사실상 공급사가 아닌 소비자이다. 비용부담의 주체가 소비자인 만큼 해당 사업에 대해 도시가스를 사용자는 소비자의 의향은 어떠한지도 공청회 등을 통해 충분히 수렴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다기능인 원격검침계량시스템이 보급될 경우 계량기 비용 상승으로 인해 도시가스 기본요금(지자체별로 900~1200원)은 오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투자비용이 요금으로 회수하는 구조이다 보니 소매공급비용 반영 여부가 관건이며, 이는 전적으로 지자체의 몫이다.

이렇다보니 도시가스사는 투자비용만큼 제대로 소매공급비용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며, 이 부문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정부의 원격검침계량시스템 선진화 사업은 성공할 수 없고, 민간사의 자발적 참여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결국 공급사의 초기 투자비용을 소매공급비용으로 반영할 지 여부와 관련기준 개정 등을 산업부와 지자체가 사업 추진에 앞서 충분한 논의하고, 협의하여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관리 주체, 법령 정비 등 과제 많아 

또 현재 가스계량기는 소비자의 자산으로 분류되어 있다. 즉 계량기는 현행 관련법상 사용자시설물로 분류되어 있고, 소비자가 매월 기본요금을 통해 계량기 비용을 분납하고 있다. 또 5년 주기로 계량기 성능을 재검받고, 1회에 한해 재활용되고 있다.

비록 계량기 소유 주체는 소비자이지만 소비자의 안전과 편익을 위해 공급사가 검침업무와 유지관리 등을 맡고 있으며, 재검증도 대행하고 있다.

정부는 원격검침계량기가 보급될 경우 앞으로 안전과 관리의 효율성을 더 높이기 위해 사용자시설물인 계량기를 공급자시설물로 전환 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도시가스업계의 입장은 반반이다. 종전까지 계량기가 사용자시설물인 만큼 계량기와 관련된 분실 및 사고 등은 전적으로 소비자의 몫이다. 하지만 공급자시설물로 전환될 경우 이는 180°로 달라진다. 우선 비용부담 주체가 소비자인데 계량기를 공급자시설물을 분류하면, 투자비용 역시 공급사가 부담해야 된다는 지적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결국 비용은 소비자가 내고, 자산은 공급사 것으로 하는 것은 소유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사용자시설물일 때와 달리 계량기 관련사고 발생시 전적으로 공급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도 우려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도시가스사들은 원격검침계량기를 사용자에서 공급자시설물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만큼 관련기준과 규정 등을 먼저 재정비가 필요하다.

여기에다 기기 재검증 주기, 제품의 정확성과 신뢰성 그리고 사후 A/S문제, 사유지 설치관련 점용료, 원격검침계량기 도입에 따른 고객센터의 인력 축소 문제 등도 더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 2004년 원격검침보급 사업 후 애물단지가 된 원격검침시스템(중계기 및 집중기)

실패 사례 답습 말아야 

도시가스사는 원격검침계량시스템 선진화 사업이 업계에 투자비만 부담토록 하고, 이 비용을 제대로 요금으로 회수하지 못할 경우 경영에 막대한 손실을 끼칠 수 있는데다, 자칫 관리 주체와 사고 책임까지 떠 안을 수 있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업 추진에 앞서 여러 가지 선행과제들을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과거 실패했던 사례를 답습하는 등 ‘제2의 원격검침 실패사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가 정말 원격검침계량시스템 사업이 가야 할 신산업 중 하나로 판단된다면 업계와 지자체 그리고 소비자가 공감하는 정책방향과 목적을 제시하고, 실제로 이행이 될 수 있도록 관련규정 등을 먼저 정비한 후 단계별로 다기능원격검침계량기 보급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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