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스연소기가 처음 사용된 것은 90년 전인 19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실질적으로 보급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80년대 이후로 볼 수 있다. 70년대까지는 가스레인지류만이 가스기기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말과 90년대 들어 도시가스배관이 전국으로 보급되면서 가스보일러, 가스오븐레인지, 캐비닛히터 등 다양한 종류의 가스연소기가 보급됐다. 이에 따라 가스연소기 시장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판매와 생산이 늘었다. 오히려 현재는 95년이나 96년을 정점으로 감소추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스연소기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가스레인지는 90년대 초부터 보급률이 거의 100%에 육박해 전 국민이 사용하는 기기로 자리 매김 했으며 가스보일러도 가정용 난방기구의 총아로 현재 8백50만가구가 가스보일러를 사용하는 규모로 확대돼 왔다. 80년대까지는 가스레인지가, 90년대부터는 가스보일러가 가스연소기의 보급확대에 주역을 맡아왔다.

■ 60년대 이전

국내에서 처음 사용된 연소기는‘가스등’으로 1909년 일본인 상가 등에 공급된 것이 최초로 기록되고 있다. 연료는 석탄가스였으며 1915년 등화 가구수가 1만6천개에 이른 것을 정점으로 전등에 그 수요가 밀렸다. 당시에는 지금의 주물버너와 유사한 ‘가스곤로’도 사용됐으나 광복 후 연료탄 확보의 어려움과 6·25전쟁때 가스제조소들이 파괴되면서 석탄가스시대의 막이 내렸다.
6·25전쟁 이후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LPG와 가스기기가 보급됐으나 그 수는 미미했다.

■ 60년대

60년대 들어서도 가스기기의 보급이 크게 늘지는 않았으나 10kg LPG용기가 일본에서 수입되면서 가스연소기들도 함께 일본에서 반입됐다.
당시 가스레인지는 수입 금지품이었으나 외항선 선원에 의해서 일부 반입됐고 65년 한일국교정상화이후에는 부관페리의 왕래가 활발해지면서 귀국시 휴대품으로 반입하는 사례로 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극동주공의 전신인 등산주공사는 가스주물연소기를 국산화했으며 가스레인지는 67년 LPG용기가 국산화되면서 흥안공업사, 금성사, 성산산업 등이 일본에서 2화구와 2화구 그릴 가스레인지의 부품들을 수입해 조립생산하기 시작했다.

■ 70년대

국내 가스연소기 시장이 본격화된 것은 74년 일본 가스연소기 점유 1위 업체인 린나이와 50대 50 합자로 설립된 린나이코리아와 일본에서 부품을 수입해 조립생산해온 후지카, 한국린나이 등이 가스레인지를 생산해 보급하면서다.
초창기 가스기기의 역사는 가스레인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가스레인지는 가정용 취사기기의 대표주자로 가스가 가지는 청결성과 편리성 등으로 인해 보급이 급속도로 늘었다.

역시 2버너나 2버너 그릴 가스레인지가 주축이었으며 주물연소기도 음식점을 주축으로 계속 시장이 확대됐다. 그릴부 3버너 가스레인지도 70년대말 첫선을 보이기도 했으나 판매비중은 매우 낮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0년대의 경우 가스자동차단안전장치 등 핵심부품이 국산화되지 않아 여전히 일본 등에서 수입돼 생산되는 수준이었다.
가스레인지와 가스주물연소기를 포함한 가스연소기의 생산량은 70년대 중반에 연 5만대 선이었던 것이 79년에는 50만대로 10배가 껑충 뛸 만큼 보급속도는 빨랐다.

■ 80년대

70년대 말의 1, 2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도시가스산업이 활성화되면서 80년대는 가스연소기의 다변화를 가져왔다.

80년대에 들어서자 일본 외에 미국과 유럽에서 가스오븐레인지, 가스보일러, 가스난로 등 다양한 가스연소기가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완제품을 수입하던 업체들이 하나씩 국산화를 시도하면서 80년대 중반이후 가스보일러, 가스오븐레인지 등이 국내에서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국내 여건에 맞는 한국형 가스연소기도 출시됐다.
가스오븐레인지의 경우 85년 동양시멘트 기계사업부로 출범한 현재의 동양매직이 수입제품을 국산화해 86년 30인치를 생산하고 87년에는 한국인 체형에 맞는 27인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보다 먼저인 82년 가스오븐레인지와 유사한 콤비시리즈를 생산한 린나이코리아는 86년 가스온수기, 87년 가스보일러 생산에 들어갔다.

가스보일러가 국내에서 첫 보급된 것도 80년초로, 82년 공영토건이 프랑스 샤포트 에모리스사의 제품을 수입하면서부터다. 그 후 2∼3년간은 프랑스의 듀발·쎌틱·르블랑, 영국의 포터론·손이엠아이·글로우웜, 독일의 바일란트·융커스·비스만, 이태리의 페롤리·비크림·베네타, 네덜란드의 AWB·네피트, 스페인의 코인트라·콜베로 등 세계 최고의 지명도를 자랑하는 제품들이 국내에 소개됐다.

84년 롯데기공이 한국가스안전공사로부터 가스보일러 정밀검사에 합격함으로써 국내 가스보일러 시장은 새 장을 열게 됐다.
그 후 대성, 코오롱 등 대기업과 가스기기 전문업체인 린나이가 가스보일러 생산을 시작하면서 80년대 말에는 수입품보다 국산품의 시장점유율이 높게 역전됐다.

특히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린 88년에는 국내 가스보일러시장이 처음으로 10만대를 넘어섰다. 85년 4천대로 시작한 가스보일러시장이 87년 3만대에서 한해 사이에 3배 이상의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이같은 시장증가율은 그 이후에도 지속돼 89년에는 23만7천대로 마감하고 90년대의 더 큰 발전을 기약했다.

■ 90년대초

80년대 말부터 이어진 가스보일러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어 90년대초 많은 업체들이 가스보일러 사업에 참여했다. 한 때 생산 및 수입업체가 37개사에 이른 적도 있다. 대일, 제일정공, 금성(현 LG), 대우, 후지카대원, 한국엔지니어링, 경동보일러, 신광산업, 라니산업 등이 본격적인 가스보일러 개발에 나섰다.

이로 인해 91년 생산량이 50만대에 육박했고 많은 생산업체들은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자동화를 추진해 전체 생산능력이 1백만대 규모로까지 늘렸다. 이러한 과잉시설은 지금까지도 출혈 판매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90년초에도 과열경쟁으로 채산성이 악화된 중소기업들이 심각한 자금난으로 하나 둘씩 문을 닫았다. 가전 3사 중 대우를 제외한 삼성과 금성(현 LG)도 가스보일러 사업을 정리했다.

어쨌든 이러한 과열경쟁속에서도 정부의 도시가스 보급확대 정책에 힘입어 가스보일러 판매시장은 93년 64만대를 넘어서는 기록을 세웠다. 94년 63만대, 95년 61만대로 감소하긴 했으나 90년대 초는 가스연소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가스레인지시장의 경우 린나이코리아, 동양매직 등 가스기기 전문업체와 LG전자, 삼성전자, 대우전자 등 가전 3사와 경쟁이 계속됐는데 95년 연 생산량이 2백30만대를 기록하는 선까지 성장했다.

■ 90년대후반

90년대 초반 가스연소기 시장의 가파른 성장은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생산업체들의 난립으로 과열경쟁이 계속돼 가격하락 현상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시장도 감소하기에 이르렀다.

가스레인지는 95년이후 생산량이 매년 감소추세로 돌아서 97년에는 2백5만대 규모로 줄었다. 97년 12월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98년 생산량은 1백40만대로 30%가까이 시장이 감소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 후 소폭 증가추세에 있으나 과거와 같은 전성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가스보일러도 97년 88만대를 정점으로 감소세에 있다. 그러나 가스보일러의 신규 수요의 경우 몇 년 전에 건설된 주택경기 덕분으로 소폭의 감소나 소폭의 증가를 기록했다.

반면 93년부터 10만대 선을 조금씩 넘고 있는 가스오븐레인지시장은 90년대들어 가격하락추세로 오히려 판매가 증가하는 기현상을 가져왔다. 1999년 생산량이 16만대에 육박하는 선까지 늘어났다.

■ 2000년대 전망

가스연소기 시장은 90년대 중반이후 안정기 내지 소폭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가스연소기 시장은 사용의 편리성, 가스의 청정성 등으로 향후에도 꾸준한 발전이 기대된다.

신규 수요는 앞으로 더 늘어날 분야가 적지만 교체수요는 계속해서 발생할 전망이며 세계를 향한 도전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제품관리와 끊임없는 개발로 선진외국보다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가스연소기 시장은 품질경쟁보다 가격경쟁으로 남는게 없다는 불명예를 업계 스스로가 지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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