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지역에 들어선 여러 메이커들의 고압가스플랜트.

[가스신문=한상열 기자] 요즘 국내 고압가스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분위기다. 지난해부터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산업용가스의 품귀현상과 일부 고압가스메이커의 합병 및 매각 등으로 인해 크게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고압가스업계에서는 국가 전반에 걸친 경제가 침체국면에 빠진 요즘 산업용가스의 수요 감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부터 질소, 산소, 탄산 등 일부 품목의 공급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선뜻 이해하지 못하며 한숨만 쉬는 상황이다.

이 같은 사태는 최근 국내에 건설된 공기분리장치(ASU)의 대부분이 반도체제조사의 온사이트플랜트로 대규모이기 때문이며, 유지보수가 겹칠 경우 물량 쏠림현상이 나타나 고압가스유통시장에 심각한 파장을 일으키기 쉽다. 이와 함께 이들 온사이트플랜트는 액체가스보다 기체가스를 많이 제조할 수 있도록 설계돼 벌크공급방식을 통한 액체가스와 고압용기에 충전된 기체가스 공급에 큰 차질을 주고 있다.

또 지난해 여름에는 사상 최악의 가마솥더위로 인해 단위 사업장에서의 질소 생산량이 줄어 수도권에서 시작된 공급부족현상이 중부권, 영남권 등으로 남하하면서 6월부터 10월까지 5개월 간 지속됐다.

 

영남지역 이미 수급불안

올해도 부산경남지역에서는 벌써 산소와 질소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가스매입과 관련해 고압가스충전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남지역의 한 고압가스충전소 관계자는 “부산 미음산단에 건설하고 있는 고압가스메이커의 플랜트 퍼지용으로 질소가 엄청나게 소요되고 있는 가운데 울산의 한 고압가스플랜트도 유지보수가 이어졌다”면서 “이로 인해 부족해진 양만큼 유통시장에서의 물량을 빨아들이고 있어 고압가스 충전 및 판매소들이 크게 고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가스공급이 달리는 상황은 올해도 산발적으로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것이 대부분의 고압가스 영업담당자들 전망이다.

문제는 이러한 공급부족현상이 매년 재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고압가스메이커들은 일시적 부족현상으로 인해 수백억, 수천억씩 투자해 플랜트를 건설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추가로 플랜트를 건설하려 해도 투자비 회수가 어렵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최근 고압가스판매사업자들 사이에서는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충전시설을 갖추는 등 도매시장의 대열로 합류하고 있다.

 

헬륨 품귀현상도 심각

최근 헬륨의 품귀현상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부터 미국 토지관리국(BLM)으로부터 수입되는 헬륨은 경매가격이 2배 이상 오른 데 반해 공급량이 50% 가량 감소했기 때문이다.

미국, 카타르, 알제리 등에서 헬륨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미 헬륨 판매가격이 급등했으며, 가격도 가격이지만 헬륨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상황이다.

현재 반도체, 의료, 용접 등의 분야에 헬륨을 판매하고 있으나 고압가스 충전 및 판매단계의 시장에서는 헬륨이 없어 공급을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내용적 47ℓ 규모의 고압용기에 충전된 헬륨의 가격이 10만원대에 거래됐으나 올해 초 30만원, 그리고 최근에는 40만~50만원까지 치솟는 실정이다.

올해는 특히 탄산의 공급부족현상도 빚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바싹 긴장하고 있다. 이미 여러 곳의 탄산플랜트가 유지보수로 인해 가동을 멈춰 섰고, 이러한 여파로 인해 올 여름까지 탄산 수급에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탄산업계는 비록 원료탄산의 부족으로 인해 시장이 위축되고 있으나 내실을 기하면서 영업이익 및 당기순이익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탄산업계의 한 영업실무자는 “공급물량이 남아돌 때에는 과당경쟁으로 인해 가격이 하락하면서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요즘은 가격이 안정되면서 오히려 이익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수가스메어커는 희망적

반도체용 특수가스시장도 심상치 않다. 기술과 자본력이 튼튼한 다국적기업이나 대규모의 국내 특수가스메이커들은 반도체시장의 성장과 함께 큰 폭의 성장을 이룩하고 있으나 최근에 들어선 신생 특수가스메이커들은 고전하고 있다. 특수가스메이커들 사이에서 양극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국내 반도체용 특수가스업계의 양대산맥인 SK머티리얼즈와 원익머트리얼즈는 시의적절하게 투자가 이뤄져 매년 큰 폭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반면 일부 신생 특수가스메이커의 경우 양산체제까지 갖춰 놓고 판로를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시장이 위축되고 있지만 버슘머트리얼즈코리아, 백광산업, 한국메티슨특수가스 등 몇몇 특수가스메이커들은 잇따른 투자로 다소 희망적이다.

 

고압가스메이커들 지각변동

이처럼 산업용 고압가스시장의 양상이 새롭게 바뀌는 시점에서 올해 초 프렉스에어코리아와 린데코리아(산소, 질소 등의 사업 제외)의 합병회사인 린데PLC코리아가 탄생했고, 지난 3월 매각 대상이었던 린데코리아의 산업용가스부문의 사업을 국내 사모펀드인 IMM PE에 매각하면서 독일에 본사를 둔 린데와 미국에 본사를 둔 프렉스에어의 글로벌 합병이 대부분 마무리됐다.

이로 인해 그동안 고압가스제조부문의 시장은 다소 불안정해 보이긴 하나 조만간 IMM PE에 의해 재정비할 경우 빠르게 자리잡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산업용가스메이커들이 매년 가스가격을 인상했던 것과 달리 올해 초에는 올리지 못했다.

이로써 국내 산소, 질소, 아르곤 등을 제조하는 산업용가스메이커는 에어프로덕츠코리아, 대성산업가스, 린데PLC코리아와 기존의 린데코리아 등 4개사를 유지하게 됐다. 여기에 최근 설비투자에 적극 나서는 SK에어가스, 그린에어, 코리아에어텍 등 마이너급 산업용가스메이커 3개사가 약진하고 있다.

 

안전관리비용 등도 상승

고압가스 충전 및 판매업계는 특히 정부가 안전관리와 관련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단속까지 자주 해 긴장하고 있다. 과당경쟁 속에서 이익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관리비용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수도권의 한 고압가스충전사업자는 “요즘 국내 고압가스 충전 및 판매업계는 사면초가에 처하게 됐다”면서 “고압가스 수요 감소로 인해 매출액이 줄어들고 과당경쟁 속에서 이익까지 감소하는 가운데 안전관리비용이 더욱 늘어나 이중고·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또 “앞으로 사업과 안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등 가스사업에 있어서의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을까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또 다른 고압가스사업자는 “국내 고압가스 충전 및 판매업계의 안전관리수준이 매우 낮은 것은 사실 아니냐”면서 “앞으로 법은 법대로 지키면서 불편하고 소모적인 규제를 고압가스사업자들의 힘을 모아 개선해 줄 것을 정부에 강력하게 건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국내 고압가스업계의 변화는 적신호가 아니며, 더욱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디딤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에 떠밀려 나가기보다는 사업자 스스로 변화를 추구해 더욱 좋은 사업환경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좌> 대규모 고압가스저장탱크. 최근에도 고압가스플랜트를 건설, 생산량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나 몇몇 플랜트의 정기보수 등으로 인해 수급불균형이 나타나고 있다. <우> 일부 고압가스판매사업자들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고압가스충전시설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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