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지방법원 영장계로부터 전화가 왔다.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형사 사건의 피의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니 영장실질심사에 변호인으로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위 사건은 한 대학교의 교수가 연구비를 공동 관리한 것이 문제가 되어 학교 감사에서부터 시작해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지게 된 사건이었는데, 검사는 피의자가 연구비를 공동 관리할 의사였음에도 이를 산학협력단에 알리지 않고 연구비를 지급받은 것이므로(산학협력단이 그것을 알았다면 지급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 지급받은 연구비 전액이 사기죄 편취액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액수가 수 억 원에 이르고(특경법 사기), 학생들에게 허위 진술을 지시할 우려가 있으므로 증거인멸의 우려도 있고, 범죄가 중대하므로 도주의 우려도 있다고 하면서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지면 관계상 사실관계를 단순화 하였다).

필자는 의견서에서, 우선 법리상 검사가 주장하는 위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거나 적어도 그 성부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였다(동종 유사 사건을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관련 법리 및 상·하급심 판례를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증거인멸의 우려와 관련해서는, 본 변호인이 수사 시작 전부터 향후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오해받을 수 있으므로 일체 학생들에게 연락을 하거나 접촉을 하지 말라고 교수에게 지시를 하였고 그에 따라 실제로 교수가 일체 연락이나 접촉을 하지 않았다는 점 및 향후로도 수사와 재판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연락과 접촉도 하지 않겠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도주의 우려와 관련해서는, 현재 함께 모시고 살고 있는 노부모님과 사랑하는 아내, 중학생 딸과 고등학생 딸을 버리고 도주할 곳도 없고, 도주할 수도 없으며, 도주할 생각도 없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지향하는 법 원리인 무죄추정의 원칙과 불구속 수사, 재판 원칙에 따라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피의자가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로 다루어질 수 있도록, 그 불이익 또한 필요최소한에 그칠 수 있도록, 앞으로 남은 수사와 재판에서 피의자에게 최소한의 실질적 방어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반드시 구속영장 발부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부디 영장 청구를 기각하고 피의자가 불구속 상태에서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딸의 아버지로서의 최소한의 역할은 다하면서 수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달라고 호소하였다.

오후에 시작한 의견서 작성이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완성이 되었다. 다 쓰고 보니 그 분량이 29페이지에 달하였고, 웬만한 형사 사건의 변론요지서와 견주어서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께 연락해서 초안 검토를 요청하였고, 어디 한 군데도 손 볼 곳이 없다는 답변을 듣고 새벽 3시경 사무실을 나섰다.

다음날 영장실질심사에서 미리 준비해간 의견서를 영장전담 판사님께 제출을 하고는 장장 30분간 피의자를 위해 변론을 하였다. 준비해간 변론을 모두 하였고, 꼭 말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내용도 모두 말했다. 중간에 끊지 않고 변론을 끝까지 경청해주신 판사님께 감사했다.

법정에서 필자가 준비한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기에 아무런 아쉬움도 후회도 없었다. 교수님도 같은 마음이셨는지 눈물을 흘리시며 이제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자신은 만족한다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그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다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하셨다. 변호사가 처음 되었을 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줘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위 변론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죽음 내지 그에 준하는 대가와 희생이 필요하다는 생각. 마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그리하셨듯이 말이다.

많이 걱정하실 사모님께 전화하여 영장실질심사가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 등을 설명 드린 후, 너무 피곤해서 쉬고 있었다. 보통 결과가 자정을 전후로 해서 나오기 때문에 잠깐 쉬는 도중에 연락이 올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혹시 몰라서 휴대폰을 벨소리로 해놓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 8시 무렵에 전화가 울렸다. 직감적으로 검찰임을 알고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검찰이었다. "영장 결과가 나와서 알려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기각입니다."

1분 1초라도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사모님께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끊자마자 즉시 사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사모님은 필자에게로부터 전화가 오자 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생각하셨는지 필자가 말을 채 건네기도 전에 울음부터 터뜨리셨다. 영장이 기각되었다고 말씀드리자 이내 그 눈물은 기쁨과 감사의 눈물로 바뀌었다. 교수님께서 구치소에서 기다리고 계실 테니 빨리 가서 교수님 모시고 오라고 말씀 드렸다. 얼마 후, 사모님 차에 탑승하신 교수님이 울면서 전화를 주셨다. "변호사님, 우리 딸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을 고생을 해서 몸은 너무 힘든 날이었지만, 교수님 살린 것으로 모든 것이 보답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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