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열린 ‘2023 ISH’에 참가한 귀뚜라미의 전시 부스.
중국에서 열린 ‘2023 ISH’에 참가한 귀뚜라미의 전시 부스.

[가스신문 = 양인범 기자]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한 전 세계 각국의 환경 및 에너지 관련 정책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가정에서 사용하기에는 가스보일러가 석탄·석유·화목보일러보다 환경오염물질 배출이 훨씬 적다.

이 때문에 영국은 가스보일러를 쓰는 2천만가구 중 절반 이상이 콘덴싱보일러를 쓰고 있고, 프랑스 역시 여전히 가정에 친환경 콘덴싱보일러를 교체·설치할 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도 효율적이고 위생적인 주거 환경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바닥난방이 늘어나 한국식 보일러가 인기를 끌고 있다.

미래 마켓 인사이트의 최근 자료에 의하면 세계 가정용보일러 시장 규모는 2023년 약 311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 시장 규모는 2033년 531억 달러로 2023년부터 평균 5.5%의 증가률이 예상된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주택건설 활동의 증가로 인해 주택용 보일러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본지는 이번 신년특집호에서 세계 가정용보일러의 시장 전망과 국내 제조사들의 해외 시장에서의 영업 전략 등에 대해 자세히 분석했다.

경동나비엔이 미국에 출시한 콘덴싱 하이드로퍼네스 NPF700(왼쪽), 러시아에서 판매되는 귀뚜라미의 월드알파 가스보일러
경동나비엔이 미국에 출시한 콘덴싱 하이드로퍼네스 NPF700(왼쪽), 러시아에서 판매되는 귀뚜라미의 월드알파 가스보일러

러시아 가스보일러 수요, 연간 최대 200만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몽골 지역은 한랭 사막기후에 가까워 평균 기온이 18℃ 미만인 곳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카자흐스탄은 11월 평균 최고 기온이 0℃이며, 최저 기온이 –16℃에 달한다.

즉, 난방기기에 대한 수요는 사실상 1년 내내 필요한 상황이다.

카자흐스탄 개발은행 통계에 따르면 HS 코드 8403.10 기준 2022년 중앙난방용 보일러 시장 규모는 약 1억1,36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05.7%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시장 규모는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였고, 2022년의 큰 상승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서방의 러시아 제재로 인해 카자흐스탄을 통한 러시아 교역량의 증가에서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자흐스탄 통계청에 의하면 전체 가구의 52.5%는 중앙난방을, 25.2%는 가스보일러를 사용한다. 가스가 공급되는 도시는 가격이 저렴한 가스보일러를 쓰지만, 도시 외곽의 많은 지역은 가스가 공급되지 않아 석탄 보일러도 비슷한 비율로 쓰인다.

카자흐스탄의 2022년 중앙난방용 보일러 수입 규모는 8,570만 달러이며 2022년 수입국 중 1위는 한국이며, 전체 수입 비중은 29.2%로 2021년까지 1위인 러시아 대비 3배 규모로 증가했다.

카자흐스탄의 보일러 시장은 수입 비중이 크며, 러시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한국, 중국, 독일, 이탈리아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Statista에 따르면 또 다른 주요 시장인 2021년 러시아 가정용 보일러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77.5% 증가한 약 750만 대가 판매되었으며, 이는 2021년도 러시아 전국의 건축물 증가 추세와 관련이 있다. 러시아 시장 전문가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외국산 및 국내산 가정용보일러의 점유율은 각각 60%, 40%이며 외국산 가정용보일러의 경우 약 1,000만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보일러에 대한 러시아 시장 수요는 노후화된 보일러 교체 수요 외에도 신규 주택 건설, 가스 및 난방시스템 구축 계획에 의해 촉진된다. 일례로 2021년 가즈프롬은 5개년 가스 난방 구축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2025~26년 약 2만4,000km의 신규 가스네트워크를 확장해 전국 71개 지역의 53만8,000가구 이상에 가스 난방 시스템을 구현할 계획이다. 이 프로그램 실행을 위해 수십만 개의 난방 설비가 필요하며, 가스보일러의 연간 수요는 150~200만 대로 추산된다.

러시아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주택 건설 규모를 최소 연간 1억2,000만㎡까지 확대하고, 난방 및 수도 시스템을 포함한 약 10억㎡의 주택 공간을 새로 건설할 계획이다.

카자흐스탄 남쪽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역시 보일러 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주택들은 과거 소련 시절에 건설된 중앙난방 시스템 주택이 대부분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신규 주택 건설이 증가하고, 동시에 5층 이하의 주택에 개인 난방의 사용이 허가되면서 우즈벡 시장에 벽걸이형 가스보일러가 들어왔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다양한 보일러 수입 업체가 있는데, 주요 국가는 중국, 터키, 이탈리아, 한국, 러시아 등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지난해 4월 10일 ‘민관협력형(PPP)사회기반시설의 난방 시스템 현대화에 관한 대통령 결의안’이 채택되어, 난방시스템 관리가 정부 주도에서 민간으로 바뀔 예정이다.

PPP형 난방시스템 현대화 사업에는 총 5,000억 숨(우즈벡 화폐)이 투자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 난방 보일러 제조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2025년 1월 1일까지 일부 수입 상품에 대한 관세가 면제된다. 우즈베키스탄 시장 내 판매 중인 브랜드는 나비엔(Navien), 비에스만, 아리스톤, Vitech, Royal, Wenta 등이 있다.

‘아쿠아썸 타슈켄트 2023’에 참가한 경동나비엔 부스.
‘아쿠아썸 타슈켄트 2023’에 참가한 경동나비엔 부스.

한국 보일러,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2위

시장조사기관 IBIS 월드에 따르면 2023년 미국 보일러 제조 시장의 규모는 약 99억7,600만 달러로 추산된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의 영향으로 큰 가격대의 소비가 줄면서 전년 대비 2.6% 축소됐지만, 시장이 안정화되면서 향후 5년간 연평균 0.8%씩 성장해 2028년에는 103억4,400만 달러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우스에너지.com에 따르면 미국 가정 난방은 주로 뜨거운 공기를 발생시켜 온도를 조절하는 강제 통풍시스템(Forced air system)과 레디에이터를 통해 온수나 스팀을 보내 바닥이나 공기를 데워주는 방사열 시스템(Radiant Heat system)이 많이 사용된다. 한국에서 주로 쓰이는 바닥을 데우는 방식은 설치와 유지 면에서 비용 부담이 커 강제 통풍 시스템이 일반적이다.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상업용 보일러 시장에서 최근 전통 방식의 보일러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콘덴싱보일러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미국 내 상업시설에서 에너지 효율 기준이 높아지고, 강화되는 건축 법규로 인해 보일러 교체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 해당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 전망된다.

2022년 미국 보일러 수입액은 3억7,470만 달러로 2021년 대비 17.5% 증가했다. 이는 달러화 강세로 수입산 제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전체 수입 시장에서 한국은 점유율 26.3%, 수입액 9,863만 달러를 기록해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29.7%, 1억1,118만 달러로 캐나다였으며, 한국에 이어 독일과 이탈리아가 3, 4위를 기록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보일러의 연간 연료 이용효율(Annual Fuel Utilization Efficiency, AFUE)의 기준을 정하고, 이 기준을 충족해야만 시판을 허용하고 있다. AFUE는 보일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료를 이용해 난방을 제공하는지를 백분율로 표기한 수치를 표와 같이 기준을 정했다.

이 외에도 미국 환경보호청(EPA)와 에너지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에너지 스타 인증을 통해 고효율을 인증할 수 있으며, 인증 기준은 오일 보일러의 경우 AFUE 87% 이상이고, 가스보일러의 경우 90% 이상이다.

미국에서는 신규 주택 건설 경기가 안정적이고, 에너지 효율 기준이 높아지면서 노후 보일러 교체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미국 내에서 ESG 기조가 강화되면서 일반 소비자들까지 환경을 고려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

유럽에서 주요 보일러 사용 국가는 영국인데, 영국에는 약 2,300만 개의 가스보일러가 사용되고 있으며, 동시에 주택이 노후화되어 있다. 영국 정부는 히트펌프 보급을 늘리려 하지만, 노후 주택의 단열과 비용 문제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국민들이 여전히 보일러를 선호해 2035년 이전에 1,000만 개의 새로운 보일러가 설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EU 전체 회원국에는 약 1억2,900만 개의 보일러가 사용되고 있는데, 그 중 상당수는 비효율적이며 50% 이상이 에너지 라벨 C등급 이하이다. 노르웨이는 2020년에 기존 건물과 신규 건물 모두에서 화석연료 보일러를 금지했다.

독일은 현재 2025년부터 대부분의 새로운 석유 및 가스 난방 시스템 설치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는 2045년까지 모든 화석 연료 난방 시스템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내 제조사, CIS 등 새로운 시장 확보 노력

북미 ‘AHR 엑스포 2023’에 참가한 대성쎌틱에너시스의 부스.
북미 ‘AHR 엑스포 2023’에 참가한 대성쎌틱에너시스의 부스.

세계 가정용보일러 시장 수요는 유럽보다 러시아 포함 중앙아시아와 북미 시장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국내 제조사들 역시 이러한 시장 흐름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귀뚜라미는 그동안 국내 매출 비중이 90%에 달해 내수 기업으로 꼽혔지만, 지난해 7월 김학수 해외영업본부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하면서, 해외매출 비중을 대폭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 대표는 “2030년까지 해외 매출 비중을 50% 이상으로 확장시키고, 수출 조직 강화와 현지 실정에 맞는 신제품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귀뚜라미는 1992년 중국을 시작으로, 1994년 러시아, 1997년 그리스, 2010년 우즈베키스탄, 2012년 브라질, 2014년 미국, 2016년 멕시코, 2017년 칠레 등으로 진출 범위를 넓혔다.

현지 법인을 운영 중인 중국에서는 메이가이치(석탄 개조 사업) 정책에 맞춰 콘덴싱 가스보일러, 캐스케이드 시스템, 가스온수기 등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특히, 중대형 평수 및 고급 주택에 적합한 모델로서 ‘고급 빌라형 가스보일러’와 ‘중형 하이핀 보일러’ 등이 관심을 받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전체 매출의 약 67%가 해외 비중이며, 북미를 비롯한 47개국에 보일러, 온수기 등을 수출하며 국내 보일러 수출의 88%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북미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콘덴싱온수기 및 보일러에 더해 메인 난방 시장인 ‘퍼네스(난방용 용광로)’ 진입을 위해 ‘콘덴싱 하이드로 퍼네스’를 출시했다.

북미 지역의 주요 난방 기기인 퍼네스는 시장 규모가 연간 470만대로, 콘덴싱 온수기 시장의 약 5배 이상에 달한다. 온도가 높은 연소 배기가스로 공기를 가열해 실내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국내 호텔 등 대형 숙박업소의 난방 시스템과 유사하다.

온수로 바닥을 데우는 보일러와 달리 공기를 직접 가열하기에 매우 건조하고, 실내 온도 편차가 커서 난방 쾌적성이 떨어진다. 또, 불완전연소 등으로 유해가스가 공기를 통해 실내로 유입될 위험성도 있다. 경동나비엔이 출시한 ‘콘덴싱 하이드로 퍼네스’는 물을 먼저 데우고 이를 이용해 공기를 가열해 실내로 공급하기에 공기가 건조하지 않다. 특히 물의 온도를 조절해 실내 온도를 구현하며, 보일러부와 송풍부를 분리해 유해가스의 실내 유입을 방지해 안전문제도 해결했다.

대성쎌틱에너시스 역시 해외 시장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성쎌틱은 지난해 2월 6일 미국에서 열린 ‘AHR 엑스포 2023’에 미국 법인인 ‘VESTA’가 참가했다. 대성쎌틱은 국내에서 보편적인 순간식 온수기 기술과 미국에서 대중적인 저탕식 기술의 장점을 적용한 하이브리드 온수기인 VHP 모델을 선보였다.

대성쎌틱은 2022년 2월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아쿠아썸 모스크바 2022’에도 참가해, 주력 모델인 E클래스 및 A MAX 보일러 등을 선보였다. 특히 신제품 D MAX(RC 부착형)보일러는 러시아를 비롯한 CIS(구 소비에트 연방)국가의 다양한 환경에서 잔고장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저압 가스 상황에서 안정적인 연소를 가능하게 해 인기를 끌었다.

러시아를 비롯한 CIS 지역은 개별 난방으로의 전환이 대세가 되고, 동시에 가스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내 제조사들의 새로운 타깃 시장이 되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10월 4일 열린 ‘아쿠아썸 타슈켄트 2023’에 참가해 현지 거래인 100여명이 참가하는 ‘딜러 컨퍼런스’도 개최했다.

경동나비엔은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 인접 국가들에서도 관심이 크다는 점에 주목해 지난해 우즈베키스탄 법인을 새로 설립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유통·설치·서비스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획도 진행하고 있다.

국내 제조사들이 새로운 시장에 대한 점유율을 넓히고자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난 2022년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기도 하다.

보일러 제조사의 한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고 있다보니, 수출 등에 있어 제약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러시아·CIS 지역은 향후 가스보일러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다”며 “현지 사정에 적합한 제품 개발과 유연한 서비스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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